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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와디 강변의 부 파고다(Bu Pagoda)에서 본 풍경

60년대해도 우리보다 잘 살았다는 미얀마는 군부정권을 거치며 빈부 국가로 전락하였다고 한다.

위정자들의 정치와 나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한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믿는 그들은 지금은 어려워도 나쁜짓 안하고 베풀면 다음 생(生)에 잘 태어날 거라고 믿는단다.

그래서 그런지 가난해도 그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고 순박하다.

▼시내 버스 같은 교통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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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4일 - 소티 왕의 전설을 간직한 이라와디 강변의 부 파고다(Bu Pagoda)

오전 일정을 끝내고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가진 다음 이라와디 강가의 부(Bu) 파고다에 가다.

 

아쿠아 슈즈는 넣어 두고 ​간단한 샌들로 갈아 신었다. 양말도 거추장스런 구두도 필요없는 나라. 사원에 입장할 때는 누구라도 맨발이어야

하는 곳.​ 사람들이 다닌 곳은 반들반들 윤이 나고청소가 잘 되어 발바닥을 다칠 염려가 없어 자연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바간에서 가장 오래된 파고다인 부 파고다는 이라와디강가의 모든 조롱박들을 없애 버리고 지었다는 재미있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부는 우리나라의 바가지를 만드는 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300년 경에 건설된 바간에서 가장 오래된 파고다로 1975년 지진으로

무너졌으나 복원 후 뛰어난 풍광으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최초의 미얀마족 왕이라 불리는 타모다릿이 이 지역에 도시를 건설할 때

조롱박과 거대한 새와 멧돼지,호랑이, 다람쥐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는데, 퓨의 태양족왕가에서 태어난 16살의 퓨소티가 바간에 와서

활로 이것들을 제거했다. 그 공으로 왕의 공주와 결혼하여 왕위를 물려받게 되었다.

 

"조롱박" 이라는 뜻의 사원 이름에 관련된 전설이 사원 입구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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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하 사원 (Manuha Temple). 난파야 사원(Nanpaya Temple)


마누하는 아노여타 왕이 불경을 빌려달라는 제의를 거절한 탓에 정벌당한 타톤 왕국의 
마지막 왕이다. 

왕국이 패망하며 이곳으로 끌려온 그는 1059년에 이 사원을 지었다. 3개의 좌불과 1개의 와불을 통로에 꽉차게

답답하게 안치하여, 감옥생활의 심경을 재현해 놓은 사원이다. 답답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공간을 가득 채운 큰 불상은

자유를 잃은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마누하 사원 바로 옆에 자리한 난파야 사원은 마누하 왕의 감옥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뒤쪽에는 마누하 왕이 갇혀 있었다고 전해지던 난파야 사원(Nanpaya Temple)이 있다.

어두운 내부에는 브라만 상이 조각돼 있어 과거, 힌두 사원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파고다의 외부는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로 올라갈 수록 점점 더 작은 직사각형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원입구에는 황금 바릿대가 있어 계단으로 올라가 시주를 할 수 있다.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는데 이것은 죽음만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임을 의미하고 있다고 한다. 

▼​와불이 있는 통로는 겨우 한 사람이 오갈 수 있​다.

▼​힌두 사원에서 볼 수 있는 조각이 보인다.

왕과 왕비

▼수시로 빗질을 하여 바닥은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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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칠기공예 - Myanmar Lacquer Ware

수공예 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칠기 공방. ​얇게 저민 대나무살을 이용하여 여려겹으로 용기의 모양을 만든 다음,

그위에 천을 덧대고 초벌 칠한 다음 그늘에서 말린다고 한다. 사포로 문지르고 옷칠을 하고 하나하나 손으로 문양을 새겨 넣고 있다.

평상에 돗자리를 놓고 그 위에 나란히 앉아 작업을 하는데 손놀림이 섬세하고 노련하다.

 

얼마나 한국인이 다녀 갔는지 아이도 어른들도 코리안 사탕을 달라고 한다. 과자와 사탕을 큰가방에 두고 나온 ​터라

베낭에 있던 쵸코렛과 사탕을 주었는데 아이가 상당히 좋아한다.​ 본인이 그린 엽서만한 그림을 1달러에 사달라고 하는데 

그악스럽지도 않고 순박한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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