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헌 작가는
여전히 아날로그 흑백 프린트를 고수하고 있는 소수의 사진가 중 한 명으로, 한국 사진계에서 “민병헌”이라는 이름은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독보적인 형식적 스타일, 즉 중간톤의 회색조의 프린를 통해 드러나는 서정적인 자연 풍경과 동의어로
통한다. 1987년 울퉁불퉁한 돌덩이가 박힌 길, 자갈이 굴러다니며 잡초가 군데군데 삐죽 튀어나오고, 바퀴자국으로 어지럽게
패인 거친 땅바닥을 스트레이트(straight) 하게 찍은 <별거 아닌 풍경>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민병헌 작가는
1990년대 중반 <잡초(Weed)> 시리즈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특징적인 스타일을 꽃피우기 시작하며 사진계에 그의 이름을 확고하게 새겨 넣었다.
민병헌 작가의 화면은 늘 절제되고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 조형성을 자랑한다. 이와 함께 극단적으로 밝은 톤으로 연회색의
농담을 최대한 활용하거나, 반대로 진한 회색 혹은 갈색 톤으로 일관함으로써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와 독특한 촉각성을
자아내는 그 미묘한 계조의 프린트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담은 그의 최근작 에서는
물살의 추상적인 형태의 조형성, 프린트가 만들어내는 물의 촉각성과 함께, 물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사진심리학자 신수진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폭포 사진들은 셔터를 길게 늘려 물의 흐름이 과장되었거나 반대로 셔터를
짧게 끊어서 극적으로 고정시킨 것들이었지만,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폭포의 물줄기는 그야말로 딱 ‘중간’으로 흘러내린다”라고
평가하는데, 이 작업에서 그는 화면 구성의 균형 감각에서 셔터속도에 의한 속도의 균형 감각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보인다.
2004년에 이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민병헌 작가의 전시에는 <폭포 Waterfall> 시리즈를 중심으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안개 Deep Fog>, <나무 Tree>, <스노우랜드 Snowland> 시리즈까지 자연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 약 72점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이제는 여느 사진전에서 보기 힘든—엄청난 장인적인 노고와 기술적인 엄격함이 요구되는—아날로그 방식으로 인화한
대형 작품들을 다수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 섬세한 풍경을 담아내기 위해 흐린 날만 골라 사진을 찍는다는 민병헌 작가 작품 가운데 인상 깊었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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