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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금강군 내강리에 있는 사찰.

장안사는 표훈사 아래 있는 내금강의 거찰로 신라 23대 법흥왕 515년에 진표가 창건했다. 그후 990년 고려 성종 때 회정이 중건하였고, 14세기 중엽 원나라 기황후가 관원을 고려에 파견하여 중창하였다. 이후 여러번 중수하였고, 조선 말기에 지장암과 비로전 · 극락전을 세웠다.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96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안사금강산의 4대 사찰의 하나로 내금강 만폭동의 유명한 명승지였으며, 내강리 금강산 장경봉 아래 비홍교(만천다리) 건너편에 그 터가 자리잡고 있다. 신라 법흥왕 때, 또는 556년(고구려 양원왕 11) 고구려의 승려 혜량이 신라에 귀화하면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773년(신라 혜공왕 8) 율사 진표()가 중수하였고, 970년(고려 광종 21) 불타 없어진 것을 982년(고려 성종 1) 회정()이 중건하였다. 1343년(충혜왕 4) 원나라 순제()의 왕후인 고구려인 기씨()가 돈과 공인들을 보내와 무너진 건물을 중건하고 새 누각을 지었다.
1458년(세조 3) 세조가 대웅전을 중수하도록 명하고 토지를 하사하였는데, 1477년(조선 성종 8) 소실되어 일청()이 중건하였다. 1537년(중종 31) 다시 불타 1545년(인종 1) 일청이 또 중건하고,  1728년(영조 4)과 1791년(정조 15) 중창·중건된 뒤 1842년 부원군() 조만영()의 보시로 300여 칸의 대찰로 증축되었는데, 1863년 호조판서 김병기()가 주상하여 공명첩(空) 500장을 내리게 하고, 자신이 1,200냥을 보시하여 중수하였다.

가람배치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한 구역과 사성전을 중심으로 한 구역의 두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각 중심법당은 중층 구조로 되어 있고 각 영역 입구에 누각 건물 하나씩 갖추고 있었다. 6전(殿)·7각()·2루()·2문() 외에 10여 채의 부속건물이 있었는데,  6·25전쟁 때 불에 타버리고 축대·비석 등만 남아 있다.

출처/ 장안사 [長安寺 ] | 네이버 백과사전

▼ 유점사와 표흔사.신계사와 더불어 금강산의 4대 사찰로 꼽혔으나  현재는 폐허가 되어 장안사터라 쓰인 푯말만 있다.

 

 

 

 

▼ 장안사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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