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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될줄 알면서도 - 조병화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의 가슴에 안겨들은 것입니다

 

벗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사람들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이 아스팔트

 

어느 이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을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했습니다

 

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하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나를 믿어야 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하나의 최후와 같이

당신의 소중한 가슴에 안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조병화(趙炳華, 1921년~2003년) 시인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아호(雅號)는 편운(片雲)이며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였다. 경성사범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 고등사범학교 물리화학과를

졸업하였다. 광복 후 경성사범학교, 제물포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의 교사를 지냈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등단했다. 지금까지 창작시집 52권, 시선집 28권,

시론집 5권, 화집 5권, 수필집 37권, 번역서 2권, 시 이론서 3권 등 160여권의 책을 냈다. 그의 시는 인간의 숙명적 허무와 고독을 쉽고도 아름다운 시어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1955년 중앙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등을 거쳐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장, 세계시인대회장, 세계시인대회 대한민국 국제 이사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한국시인협회 명예 계관시인,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등을 지냈다.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비롯하여

국민훈장 동백장, 모란장, 서울시 문화상, 3·1 문화상, 예술원상, 3.1문화상, 대한민국 문학대상, 금관 문화훈장, 5·16민족상 등을 받았다.

시집으로 《하루만의 위안》, 《인간고도》, 《밤의 이야기》,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 《공존의 이유》, 《남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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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새의 기도 - 이해인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

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속에도 기쁨이 넘쳐날

서원의 삶에

햇살로 넘쳐오는 축복

나의 선택은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내 삶의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내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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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 - 이해인

나도 나무가 되리라.

자기가 서야 할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서서

사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는 나무처럼

나도 인생의 사계절을 다 받아들여 적응할 줄 아는

성실한 시의 나무, 기도의 나무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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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정방

​꽃도 찍히면

더 이상 시들지 않는다

나무도 찍히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새도 찍히면

더 이상 날지 않는다

사람도 찍히면

더 이상 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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