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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대신 꽃잎이 쓴 이 편지를 - 홍우계

부칠 데는 없지만 써야겠다고

오늘도 꽃그늘에 나왔습니다마는

한낮이 기울도록 한자도 못쓰는데

심술처럼

얼굴 가린 바람이 와 꽃가지를 흔들자

내 볼을 간질이며 간간이 진 꽃잎이

내 말 대신 편지지에 자리를 잡을 때

내 옷에 촉촉히 스민 목련향.

내가 쓸 말 대신 향내만 촉촉한

이대로 접고 봉한 이 편지를 받으실

어디 먼 데 누구라도 계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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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 꽃 - 복효근

 

어디 연꽃만이 연꽃이겠느냐

집 뒤꼍 하수로 가에

노랗게 핀 애기똥풀 꽃보라

어릴 적

어머니 말씀

젖 모자라 암죽만 먹고도

애기똥풀 노란 꽃잎같이

똥만은 예쁘게 쌌더니라

황하의 탁한 물

암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단다

그래 잘 먹는 일보다

잘 싸는 일이 중한 거여

이 세상 아기들아

잘 싸는 일이 잘 사는 일

시궁창 물가에 서서도

앙증스레 꽃피워 문

애기똥풀 보아라

어디 연꽃만이 연꽃이겠느냐

 

- 시집 <버마재비 사랑> 시와시학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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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필 때 - 송기원

 

지나온 어느 순간인들

꽃이 아닌 적이 있으랴.

어리석도다

내 눈이여.

 

삶의 굽이굽이, 오지게

흐드러진 꽃들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지나쳤으니.

 

- '단 한 번 보지 못한 내 꽃들' (랜덤하우스 중앙, 2006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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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지요 - 김용택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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