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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류별 처세법 - 강희안

 

삼류가 멋스러운 입성으로 행사장에 나오면 바람둥이라 여기고

추레한 차림이면 더럽게 게으른 놈이라 하대한다

 

이류가 자기를 칭찬하면 사람 보는 안목이 예리하다 믿지만

비판을 일삼으면 쓸모없는 놈이라고 무시하기 십상이다

자신이 원하는 걸 모두 들어주는 삼류는 역이용하고

자신의 요구 사항을 하나라도 들어주지 않는 이류는 뭘 모르는 인간이라 홀대하리라

 

일류가 자신의 요구를 묵살할 때는 뭘 서운하게 했나를 되짚어 보지만

삼류가 소식을 전하면 그를 지겨운 놈이라고 오판하기 때문이다

종종 이류가 격조한 관계를 유지할 때는 자기를 배반했다 비난하고

전갈을 끊는 일류에게는 뭔가 바쁜 일이 있다고 예단한다

나아가 약속 시간에 30분 늦는 일류에게는 먼저 나서서 바쁜 핑계를 대주고

이류가 제시간에 당도하면 자신도 지금 막 도착했다고 눙치리라

삼류에게서 여러 시간 자신을 기다리게 만드는 오르가즘을 일삼기 때문이다

 

이류가 만난 지 며칠 만에 친밀감을 표현하면 건방진 놈 취급하고

삼류가 호감의 표현을 미루면 그 저의를 의심한다

말을 붙이는 일류에게는 기꺼이 침묵의 미덕을 베풀지만

이류가 말하고 있으면 제발 어서 자기의 얘기에 귀 기울여 주길 바라기 십상이다

그러나 삼류가 말을 꺼낼라치면 잠깐만요, 하며 서둘러 자리를 뜨며

발신자 불명의 전갈을 보내오는 당신은 대체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알고는 있는지요?

 

*- 시집 '물고기 강의실'에서

 

▶강희안 - 1965년 대전 출생. 시집 '나탈리 망세의 첼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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