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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도시 중 하나인 마드리드(MADRID)에서 서남쪽에 위치한 똘레도(TOLEDO)의 스페인 산토 도메(SANTO TOME) 성당

 

똘레도에 있는 교회 중 하나인 산토 도메 성당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에 걸려있는 명화를 볼 수가 있는데 이 명화는

오르가스백작의 장례 장면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너무나 유명하다. 왼쪽 아래에 손가락으로 매장 순간을 가리키고 있는 소년은

엘 그레코의 아들을 그린 것으로 허리에 있는 손수건에 그리스어 서명과 함께 써 있는 연도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보다

8년의 차이가 있어 아들의 탄생 년도를 써 넣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스테판 성인의 머리 바로 위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엘 그레코 자신이며 성모 마리아의 얼굴을 부인의 얼굴과 닮게 그렸다는 말들이

엘 그레코를 상당히 재미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

그레꼬의 불후의 명작인 4.8m X 3.6m 크기의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1586)

이 그림은 상하 2단으로 나뉘어 있으며 상단부는 천상계를 하단부는 지상계를 상징하고 있다.

중앙에는 천사가 팔을 감싸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이는 오르가스 백작의 혼을 표현한 것이다. 백작의 영혼이, 예수의 지시를 받은

천사의 손을 통해 하늘문으로 올려지는 장면을 대단히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은 500년이 넘도록 마치 막 그려진 것처럼

채색 상태가 완벽하다. [천지창조], [최후의 만찬], 등과 함께 성화로 손꼽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산토 도메` 성당은 성 에스테반과

성 아우구수틴 두 성인이 14세기경 이 교회에 기적적으로 나타났다는 전설이 있어 유명하다.

(촬영이 금지 되어 있어 기념사진을 보고 찍은 것임)

 

엘 그레코-  “똘레도의 화가”로 불리우는 엘 그레코(1541~1614)의 본명은 Domenikos Theotokopoulos 이다.

그리스의 크레타 태생으로, '그리스사람' 이란 뜻의 'El Greco' 로 불리웠다. 르네상스 후기~바로크를 이어주는 '마네리즘(mannerism)'

이라는 화파의 미술가로 분류된다. 16세기 후반기는 르네상스의 정점으로, 미술적 기법은 완벽에 이르렀으며 화가들은 대가의 화풍을

그대로 좇고만 있었다. 젊은 엘그레코는 처음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그는 르네상스 화가들이 이상으로 생각하던 '조화와 균형'을 깨고

인체를 기이하게 늘려놓았으며, 색채도 자연적 조화를 무시한 비현실적 색채를 사용하였다. 결국 이탈리아 화단의 맹비난 속에

36 세 때 스페인으로 건너가 똘레도에 정착했다. 엘 그레코는 스페인에서 대환영을 받았다. 이슬람 세력과의 오랜 싸움끝에 통일을

이룬 스페인에서는 카톨릭이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자연히 스페인 사람들의 관심은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종교적인

열망이나 경외, 그리스도의 고통, 심판 등에 쏠려 있었다. 더구나 당시 스페인은 종교개혁에 맞선 반종교개혁의 선두국가로서,

종교적 신비주의의 분위기도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스페인 화가들에게는 해부학이나 원근법을 이용하여 인체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일이 중요하지가 않았다. 대신 엘 그레코와 같이, 종교적인 열망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중요했다. 엘 그레코의 진가는 오랫동안 망각되어 있었으나, 19세기 이후 재평가되어 세잔 등에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과 추상파 화가들로부터 상당한 호감을 받았고, 드보르작, 하우저 등의 평론가들에 의해 크게 소개되었다.

 

▼산토 도메(SANTO TOME)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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