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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고씨동굴을 지나 먼저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마을에 갔다.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으로 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진 난고(蘭皐) 김병연( 金炳淵 1807~1863)의 묘.

태백산과 소백산이 이어지는 양백지간(兩白之間)에 자리 잡고 있는 김삿갓묘는 마대산 줄기가 버드나무 가지처럼 흘러내리는

유지앵소형(柳枝鶯巢形)의 명당이란다.정감록에 의하면 피난지 십승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니 그만큼 오지였다는 이야기다. 

 

단양 영춘면 의풍리→마락리→ 고치령을 거쳐 영주 단산면 좌석리까지 가기로 한다.

소백산과 태백산의 경계인 고치령(770m)은 마구령, 죽령과 함께 소백산을 넘는 세 개의 고갯길 중 하나였다.

지금은 승용차 한대 정도는 지나갈 수 있는 임도로 변해버린 길이지만, 영남지방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던

죽령과 달리 장돌뱅이나 인근 주민들이 넘나들던 소박한 고개.수많은 민초들의 땀과 바람과 눈물과 한숨과 아픔이 묻어있는 고개.

아리랑 고개가 바로 이런 곳이 아닐가 하늘은 맑고 푸르고 포근한 햇살이 따사롭기까지 하다.

이따금 스치듯 불어오는 바람은 차지만 공기는 신선했다.계곡을 끼고 구불구불 이어진 고갯길 옆으로 쭉쭉 뻗은 낙엽송 사이사이엔

잔설이 남아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 반면 영주로 내려 가는 길은 남쪽이라 그런지 버들강아지가 눈을 틔우고 얼음장 밑으로

졸졸 물소리가 들린다. 겨울이 저만치 달아나고 봄기운이 역력하다. 숨은 가쁘고 다리는 저려오고 허벅지까지 땡기는 것에 후회 반.

한편으론 내심 오르길 잘했다는 뿌듯함으로느리게 걷고 또 걸으며 산 정상에 가까워질 무렵에 얻어 탄 차주인이 무당이라며

기도하러 간다고 했다.

 

소백산 남녘의 영주 순흥에 유배된 금성대군이 소백산 북녘의 영월 청령포에 유폐된 단종과 순흥과 영월을 잇는 가장 빠른 길인

고치령길을 오고가며 복위운동을 준비하던 중 누군가의 고변으로 발각되어 단종과 금성대군 뿐 아니라 고갯길을 넘나들던 이들

모두 죽임을 당했다. 안타까이 여긴 백성들이 고치령 정상의 산신각에 단종을 태백산의 산신으로, 금성대군을 소백산의 산신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무속인의 말로는 기도발이 잘 받는 효험이 있는 곳이란다.그래서 그런지 무속신앙의 성지이기도 하단다.

▲무심코 생각없이 바라 본 이정표인데, 의풍리 쪽이 여신이라 음기가 강해 남근석을 세워 놓았다는

기도차 왔다는 길손의 이야기기가 그럴듯 해 보인다.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는 고치령 정상에는 고갯길을 사이에 두고 소백지장(小白地將)과 태백천장(太白天將)이라

새겨진 장승들이 서 있어 그곳이 소백산과 태백산을 가르는 경계임을 나타내고 있다

어느 날 추익한은 꿈에 단종에게 산머루를 진상하려고 영월로 오던 중 연하리에 이르렀을 때, 곤룡포와 익선관 차림에

백마를 타고 동쪽을 향해 가는 단종을 만나게 되었다. 추익한은 황망히 읍하고 땅에 꿇어앉아

“대왕마마께서는 어디로 행차하시나이까?” 하고 여쭈니 단종이 “태백산 으로 가는 길이오. 그것은 처소에 갖다두시오” 하고

말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 추익한은 기이하게 생각하고 급히 단종 처소에 가보니 단종은 이미 승하한 뒤였다.

추익한은 방금 전 만났던 것이 단종의 혼령이었음이 분명하다 생각하고 그의 뒤를 따라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종과 함께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그림.

이 나라의 고갯길을 찾아다니며 '마음도 쉬어넘는 고개를 찾아서'란 책을 냈던 시인 김하돈

고치령 같은 옛길을 걷는 재미를 이렇게 표현했다.

"길도 때로는 꼬리를 친다. 팽팽하게 당겨진 연실이 빈 겨울하늘 너머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탱탱 끌어당기듯이,

길도 가물가물 멀어지며 다가서며 내내 꼬리치는 길이 있다. 사는 동안 그저 무심히 마음 한편에 묻어두었던,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 생각들이 웅웅거리며 몰려나와 문득 어디론가 끌고가는 미증유의 오솔길.

행여 그 길 끝에 천년만년 기다려온 새아침이라도 열리는지, 더러는 새도록 잠 못 이룬 그리운 임이라도 오시는지,

설레며 두근거리며 걷는 길이 있다. 흙먼지 폴폴 일어 바람 한올 지나가면 신작로 따라 아득히 서서 울던 미루나무 슬슬 또 뒷걸음질치는…."

 

* 꼭 무엇을 보고자 떠난 길은 아닌데 그 길 끝에서 만난 그림에 필연을 떠 올린다.알게 모르게 단종과 연관이 되어 있으므로….

▼금성대군이 위리안치 되었던 곳.금성대군 위리안치 유허지(遺墟地)

위리안치(圍籬安置;탱자나무 울타리를 둘러치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심한 유배형)

 ▼  금성단(錦城壇)/국가지정문화재 사적 491호

 ▼ 복숭아를 쌌던 종이 봉지가 꽃처럼 보인다. 벌써 가지에 물이 올라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영주 순흥 금성단(錦城壇) 서북 쪽 내죽리 98번지에 있는 압각수(鴨脚樹)‘충신수’라고도 불리는 유명한 은행나무.

수령 1100년, 높이 30m, 밑둥치 둘레 5.5m로 경상북도보호수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순흥 압각수가 유명한 것은

1457년(세조 3) 정축지변(丁丑之變)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 현장을 지켜보며 순흥도호부와 함께 죽었다가 순흥도호부와 함께

다시 살아나 금성단과 더불어 역사(歷史)를 증언(證言)하며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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