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고구려 두번째 수도였던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의 국내성
국내성 고사(古史)에 “주몽(朱蒙)이 부여(夫餘)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卒本)에 이르렀다”고 하였는데,
졸본은 고구려의 첫번째 수도인 흘승골성(紇升骨城)과 같은 곳이다. AD 3년(유리왕 22) 수도를 국내성으로 옮겼는데,
그 위치는대체로 지린성(吉林省) 지안현(輯安縣)에 있는 성터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또한 광개토대왕릉비에 나오는 통구성(通溝城)이 국내성이라고 보고 있다.
국내성지도와 고구려 전성시대의 영토
국내성은 기원후 3년, 즉 유리왕 22년부터 427년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고구려 수도였던 곳이다.
전쟁 등 특수한 상황에는 다른 지역으로 일시 천도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400여 년 동안 고구려의 도읍지 역할을 했다.
졸본성에 이은 고구려 제2의 수도였던 국내성은 사각형 방형으로 북쪽 우산과 서쪽 칠성산에 에워싸인 배산임수의 천연요새이다.
압록강 서쪽에 위치한 국내성은 총면적 13,000평, 성길이 2,686m, 높이 1~5m로 총6개의 성문과 해자가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1921년 중국정부에서 성을 개수하면서 옹성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또한 동서남북에 각각 세워져 있던
성문마저 1947년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의 전투 때 소실되었다. 원래 성벽의 높이는 7m였으나 거의 훼손되어 없고 현재 민가가 있는
남서쪽 성벽 3~4m 와 아파트 건물 사이에 위치한 벽 4~5단만이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국내성 성벽의 전체 길이는 2,686m이며 동서가 남북에 비해 약간 길다.
성벽 중에 조금 튀어 나온 곳을 치라고 한다. 국내성 성곽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고구려 성의 특징은 '치(稚)'다.'
'치' 양식의 성곽구조물은 한반도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며 고구려의 성벽양식도 이 치 양식이다.
북한 식당 `묘향각`에서 만난 북한 아가씨들이 `고향의 봄`을 부를 때 몇몇분은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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