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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내에

"월기 경춘순절지처"라고 쓰여진 비석이 있는바, 이 비는 강원도 순찰사 巽菴(손암) 李公이 비용을 내고 창 군수 南羲老(남희로)가

비문을 짓고, 영월 부사 한정운이 글씨를 써서 세운 것으로 경춘이 죽은 지 24년 만인 을묘(1795) 8월이었다. 비문의 요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영월기 경춘은 이 시랑이 영월에 왔을 때 처음 몸을 허락한 터이기에 깨끗이 수절하려 하였더니 후임 관원이 온 뒤 자주 불러 볼기를 때리니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하루는 몸단장을 잘하고 들어가서 웃는 낯으로 몸을 조섭할 것이니 수일 후에 불러주면 한번 욕정을 들어 주겠노라고 하고

그 이튿날 아침 부친 산소를 성묘 하직하고 돌아와 동생의 머리를 최후로 빗겨준 다음 바로 금강 벼랑에 앉아 몇 가락의 노래를 부르니 눈물은

옷자락을 적시었고 비통함은 참기 어려웠다.  이때 어린 동생이 따라와 있었으므로 속여서 집으로 보내 놓고 분연히 벼랑에서 몸을 던져

물에 빠져 죽으니 때는 임진년(1772) 10월이었고 그 때 나이 16세였다. 집안사람들이 달려와 보니 옷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 있어 옷을 헤치고 보니

이 시랑의 필적이었다. 오호라 그의 죽음이여, 의로움을 좇음이 아니리오. 이번에 도순찰사 손암 이공이 관동지방을 살피던 길에 영월을 지나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말하기를 "미천한 신분인데도 이는 진실된 열녀라 할 것이니 옳은 풍속을 세우는데 도리가 아니겠는가" 하고 봉급을 내어

영월부사에게 비석을 세워 주도록 이르니 나 또한 그 전말을 적게 되었는지라 생각컨대 경춘이 죽은 지 24년이라 우리 이공이

이를 처음 표창함이니 경춘의 절개는 장차 지워지지 않으리라.

 

* ........................................춘향이 이야기와는 달리 해피엔딩이 아니다.

  옛 고을에 하나쯤은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인데  열여섯이면 너무 어리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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