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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대항해 시대의 영광을 간직한 포루투칼의 리스본

역사적으로 보면, 리스본은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시대부터 항구도시로서 알려져 왔으며, 로마의 지배하에도 들어갔다.

714년 이래 다시 무어인들의 통치를 받다가 1147년 알폰소 1세에 의해 해방되었다. 15세기 포르투갈이 해양대국으로 영광을 누릴 때에는

유럽 유수의 상공업 도시였으나 국력이 쇠퇴하고 1755년의 지진과 그에 따른 화재와 해일로 시가지의 3분의 2가 파괴되는 치명타를 입었다.

그후에도 이 도시의 거리와 광장은 암살과 처형, 쿠데타와 혁명을 목격해야 했으며 점점 피폐해지고 가난해지는 시민들을 지켜보았다.

국토를 남북으로 가르며 흐르는 테주 강 대서양 하구에 자리잡고 있는  리스본은 빛바랜 옛것과 새로운 것들이 묘하게 섞여 있다.

그래서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만  조금은 서글픈 느낌이 드는 도시다. 테주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7개의 언덕 위를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는 길처럼 심한 굴곡의 역사를 지닌 한때 누리던 부와 힘의 자취가 대지진으로 부서진 후  급하게 재건축된 도시에 함께 남아 있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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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lia Rodrigues ( 아말리아 로드리게즈)의  애절한 노래 어두운 숙명(Maldicao)들을 때마다 언젠가 파두의 고향  `포르투갈`을 가 보리라고 마음 속에  품고 살던 차. 2006년에 이베리아 반도 여행길에 나섯다. 리스보아는 여느 다른 유럽과는 사람도 풍경도 달라 보였다. 유럽 대륙 서쪽 맨 끝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포르투갈의 수도는 '리스본(Lisbon)'이다. 바다가 보이는 포르투갈은  우선 생각나는 것이 `파두`와 '사우다드(Saudade)` 인데 '사우다드'는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향수', '동경'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또  파두 (Fado) 어원은 Faturn으로 이 말은 라틴어로 숙명,운명 이라는 뜻이다.
전설속의 인물이 되어 버린 그녀를 공원에서 묘지와 기념비로만  만날 수 밖에  없었다.

파두(FADO)의 여왕 아말리아 로드리게스(Amalia Rodrigues)의 공원은 리스본 시내와  테주강이 보이는 에두아르두 7세 공원  맞은편 언덕에 있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즈 (Amalia Rodrigues)는1920년 리스본에서 태어나  17세에  산 안토니오 노래 경연 대회에서우승하면서부터 그녀는 음악계에 진출한다. 1950년 포루투칼 국제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 후 54년 제작된 프랑스 영화 '타쿠스 강변의 연인들'에서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검은 돛배'를 노래하여 대 히트했다.그후, 그녀는 발렌타인, 신이였네, 지나버린 바람의 노래, 갈매기, 알수 없는  인생 등을 히트시키며 "파두의 여왕" 이라는 불리게 되었다. 1999년 10월, 79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포르투칼 정부는즉시 3일 동안의  국가 애도기간을 공포하기도 하였다.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로드리게스(1920-1999.10.6)파두를  예술의 경지로 격상시킨 주인공이자, 세계적인 음악으로 만든 일등공신. 그녀의 드라마틱한 창법에 세계는 경의를 표했고, 세상을 떠났을 때  포르투갈 전체가 슬픔에 잠겨 국장으로 치렀다. 무대에서 항상 입던 검은 옷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전통이 됐다. 지금도 파두 여성 싱어들은 자주 검은 옷을 입고 노래하며, 제2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라는평가는 최상의 영예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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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4일 포루투갈 리스본(Lisbon)의 옛 모습을 간직한 알파마지구다양한 빛깔의 옛 시가지 - 알파마

리스본은 1755년 대지진으로 인하여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어 버렸는데 현재의 리스본은 퐁발 후작의 힘으로 조성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가 공존하는 차분하고 소박한 멋을 지닌 도시다.

로마 시대부터 이 고장의 중심지였고, 이슬람 지배시대에는 왕의 여름 별장과 귀족, 부호들의 저택이 있던 곳이다.
대지진에도 이곳에는 별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중세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이 특징이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율리시스(오디세우스의 라틴명)가 세웠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페니키아인들은 이 항구도시를 ‘즐거운 해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리스본은 7개의 언덕 위로 좁은 골목과 기이한 모양의 계단이 마구 얽혀 있다. 그 중 테주 강과 상 조르즈 성 사이에 있는 알파마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다. 옛날 뱃사람과 어부들의 고향이었던 곳. 리스본이 현대화된  지금도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창문 밖에 널어놓은 빨래들의 행렬, 칠이 벗겨진 낡은 건물들…. 겨우 두어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미로처럼 얽혀있던….  꼬불꼬불 골목길 끝에 탁 트인 대서양이 보이는 동네다.

12세기 그리스도교도가 이슬람교도로부터 리스본을 탈환한 뒤 건축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리스본을 폐허로 만들었던 1755년 대지진 때에도 파괴되지 않은 건물이다. 내부와 외부 모두 로마네스크 양식이 주를 이루지만 디니스왕이 건조한 고딕 양식의 회랑과 대지진 후에 다시 지은 바로크 양식의 제단 등 여러  양식이 섞여 오랜 역사의 변천을 나타내고 있다.

 대성당  천장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의 창'

골목엔 온통 서민들의 공동주택이다. 붉은 기와를 올린 지붕 아래 하얀 벽인  3~5층 정도의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며, 이른 아침 찾아간 리스본의 구시가지의 뒷골목은 생선을 파는 가게와 옷 가게,  빵집 등 시끌벅적한 재래시장과 같았다.

푸른색 타일이 많이 붙은 집일 수록 귀족이고 부자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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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로 이 나라 최대의 도시이며 유럽대륙 대서양 연안의 유명한 항구도시 중 하나이다. 일찍이 페니키아·그리스·카르타고 시대부터 항구도시로서 알려져 왔으며, BC 205년에는 로마의 지배하에, 714년 이래로는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다가, 1147년 알폰소 1세에 의해 해방되었다.
15∼16세기 해외진출시대에는 유럽 유수의 상공업 도시가 되었다. 1755년의 지진과 화재 등으로 시가지의 2/3가 파괴 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적인 건조물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의 도시는 18C의 대지진 후 죠만 1세의 명에 의해  바둑판 모양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그러나 구시가에 들어서면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럽공동체(EC)는 94년도의 유럽문화도시로 이곳을 지정하였다.
 
리스본의 아침
서울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없어 13시간여 비행기를 타고 암스테르담을 거쳐 다시 3시간여 타고 이베리아 반도 끝  `파두`의 고향  `포르투갈`에 도착하니 밤이다. 서울에서 산 짐정리를 하고 뒤척이다 보니 낮선 곳에서 보내는 밤이라  쉬이 잠들지 못하고 잠을 설친듯하다. 창문이 훤하게 밝아 와서 막 떠 오르는 일출도 볼겸 밤이라 제대로 못 본 호텔 주변을 돌아 보기로 했다.


어디나 해가 뜨는 모습은 아름답다. 떠 오르는 태양을 보며 이번 여행도 잘 보내기를 마음 속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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