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전통음악 '파두'(Fado)는 슬픈 운명의 음악이다. 파두의 어원은 '숙명'과 '운명'을 뜻하는 라틴어 '파툼'(Fatum)에서 유래됐고, 파두의 밑바탕에 드리운 '사우다드'(Saudade)는 우리의 '한'(恨)과 유사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정서다.
*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과 남도의 민속 음악(살풀이)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2005년 사진 - 포르투갈 `리스본`의 어느 선술집에서~
우리가 선술집 찾은 날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어느 바닷가 마을에 한 부부가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고기잡이 떠난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아내는 매일 바닷가에 나가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눈에 수평선 너머로 무엇인가가 보였다. 그것은 분명 남편의 배였다.
오랜 기다림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아내의 눈에 눈물이 돌았다. 점점 가까워져 오는 남편의 배.
그러나 그 배에는 검은 돛이 달려 있었다. 남편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검은 돛이...
*-검은 돛배
파두 - 파두는 복합문화의 산물이다.
유럽적인 것, 아랍적인 것, 아프리카적인 것과 브라질적인 요소가 혼합돼 있다. 파두는 이베리아반도의 문화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로망쎄(Romance)의 전통과 8세기부터 12세기에 걸친 무어인의 지배의 영향을 받은 아랍적인 숙명관 그리고 식민지 교류로 인해 아프리카와 브라질에서 흘러 들어온 리듬이 혼합된 음악이다. 또한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과 더불어 포르투갈은 기원전 8세기에 도래한 켈트인의 문화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곳이어서 파두에는 동양적인 신비주의를 느끼게 하는 켈트적인 요소들이 내재하고 있기도 하다.
파두의 전통적인 반주 악기 - '기따라'
파두의 전통적인 반주 악기는 '포르투갈 기타'로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어로는 'Guitarra Portuguesa' 또는 'Guitarra do Fado'라고 한다. 12개의 금속현으로 된 기타로 일반적으로 여섯 줄 기타와 함께 짝을 이뤄 연주된다. 파두 기타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무어인들이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했던 시기에 전해진 아랍 류트로부터 발전된 악기인 것으로 추측된다.
파두의 두 갈래 - 리스본 파두와 코잉브라 파두
파두는 리스본의 Alfama 와 Mouraria 거리의 파두와 코잉브라의 로 특징 지워진다. 리스본 파두는 보다 서민 생활의 애환을 그리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반면 코잉브라의 파두는 유럽 최고의 대학이 설립된 코잉브라의 아카데믹하며 고대 대학도시의 전통들을 반영한 사랑의 세레나데가 중심이 되고 있으며 반드시 남성 가수에 의해 불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파두와 민요의 전통이 혼합된 파두의 형태도 있는데 "파퓰러 파두(Popular Fado)"라고 불리운다. 파퓰러 파두는 표현되는 정서나 혼이 한결 가벼우며 종종 즉흥적인 연주로 이루어진다. 파두 가수를 Fadista라고 한다. 파디스타는 검은 의상을 입고 청중 앞에 선다. 파디스타의 뒤로는 연주자들이 자리하는데, 대개 일반적인 악기 편성은 두 대의 파두 기타와 한 대의 여섯 줄 기타 하나로 구성된다. 때로는 한 대의 기타 반주로 노래하기도 한다.
포르투갈의 수도로 이 나라 최대의 도시이며 유럽대륙 대서양 연안의 유명한 항구도시 중 하나이다. 일찍이 페니키아·그리스·카르타고 시대부터 항구도시로서 알려져 왔으며, BC 205년에는 로마의 지배하에, 714년 이래로는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다가, 1147년 알폰소 1세에 의해 해방되었다. 15∼16세기 해외진출시대에는 유럽 유수의 상공업 도시가 되었다. 1755년의 지진과 화재 등으로 시가지의 2/3가 파괴 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적인 건조물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의 도시는 18C의 대지진 후 죠만 1세의 명에 의해 바둑판 모양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그러나 구시가에 들어서면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럽공동체(EC)는 94년도의 유럽문화도시로 이곳을 지정하였다. ◆ 리스본의 아침 서울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없어 13시간여 비행기를 타고 암스테르담을 거쳐 다시 3시간여 타고 이베리아 반도 끝 `파두`의 고향 `포르투갈`에 도착하니 밤이다. 서울에서 산 짐정리를 하고 뒤척이다 보니 낮선 곳에서 보내는 밤이라 쉬이 잠들지 못하고 잠을 설친듯하다. 창문이 훤하게 밝아 와서 막 떠 오르는 일출도 볼겸 밤이라 제대로 못 본 호텔 주변을 돌아 보기로 했다.
어디나 해가 뜨는 모습은 아름답다. 떠 오르는 태양을 보며 이번 여행도 잘 보내기를 마음 속으로 빌어본다.
2006년 2월 25일 포르투갈 리스본 - 유럽의 땅끝 마을 까보다로까(Cabo da Roca) ‘로카 곶’ 유럽 대륙의 서쪽 끝으로 포르투갈 리스본 서쪽 약 40km의 대서양 해안에 있는 북위 38도 47분, 서경 9도 30분에 위치해 있으며 CF의 촬영 장소로 널리 알려진 곳. 인도양 발견을 위해 처음 출항을 한 곳이기도 하다. 가파른 절벽 위의 빨간 지붕의 등대와 끝없이 펼쳐진 대서양의 바다가 인상적이다. 뒤편 등대건물엔 우체국이 있고 관리 사무실이 있으며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는 이곳에 다녀 갔다는 증명서를 발급해 주기도 한다.(증명서를 받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포기~ㅎ)
기념비엔 포르투갈의 국민시인 `루이스 까몽이스(Camoes)`가 로카곶을 소재로 쓴 시가 써있다.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2월 말에 찾아간 날은 화창하던 날씨가 갑자기 변덕스럽게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였다. 우리가 다시 아래로 내려왔을 때는 구름사이로 이쁜 무지개가 나타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