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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6일차 -사랑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무덤` 타지 마할(Taj Mahal)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타지마할.

 

타지마할은 해 뜰 때부터 해지기 전까지 공개하므로 아침 일찍 움직이기로 한다. 호텔에서 30여분 거리에 있는 타지마할 입구에서

몸 수색을 끝내고 덧버선을 받아 들고 다시 탈 것으로 갈아 타고 갔을 때는 이른 시간(8시전)인데도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려

입장하고 있었다. 당시는 국고가 바닥나 백성들의 원성을 받았으나, 죽은 자가 산 자를 먹여 살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대리석과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무케두아르 정문 지나 바라 본 타지마할은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들어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채 1시간도 못 되는 시간에 타지마할을 둘러 보려니 마음만 바쁘다. 누군가 손을 잡아 끌어 가 보니 여기가 포인트이니 돈을 달라고 한다,

무시하고 무덤안으로 들어간 아들과 나는 다른 팀 가이드가 비추는 꽃을 보았는데 그 붉은 색이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본 대리석은 바깥보다 누렇게 변색되고 군데군데 검은 색은 아마도 곰팡이가 아닐가 싶다.

그 많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숨결에 온전할 리가 있으려나 싶다.

 

* 타지마할

 

무굴제국 4대 황제 자항기르의 셋째 아들로 라호르에서 태어난 샤 자한(쿠람 시하브 웃 딘 무함마드)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가장 큰 총애를 받았다. 쿠람이라는 이름은 할아버지 악바르 대제가 직접 지어 준 것으로, 페르시아어로 ‘기쁘게 한다’는 뜻이다.

1617년 데칸 지역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어 제국의 남쪽 변경을 안정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고, 항기르는 그런 아들에게

‘세계의 용맹한 왕’(샤 자한 바하두르)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이로써 쿠람이라는 본래 이름 대신 샤 자한이 된 것이다.

 

샤 자한은 1612년에 혼인한 아내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 “용모와 성격에서 모든 여성들 가운데 가장 빼어나다” 말하고

그녀에게 뭄타즈 마할, 즉 ‘황궁의 보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무굴제국 황제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종족 별로 황비를 들이는 것이

관례였고 샤 자한도 아내를 여럿 두었지만, 궁정 연대기 기록자들은 샤 자한과 다른 아내들의 관계는 ‘혼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그쳤으며 폐하의 무한한 관심과 애정은 오직 뭄타즈 마할만을 향했다’고 전한다.

샤 자한이 사랑했던 아내 뭄타즈 마할. 18세기에 그려진 무굴제국의 그림.* 자료에서 펌

 

14번째 아이 출산 도중 39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샤 자한은 하루 사이에 백발이 될 정도로 충격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가 죽은 이듬해인 1632년부터 약 22년간  그녀의 묘인 타지 마할을 만들었다. 이란 출신의 건축가가 설계하고

이탈리아 프랑스 터키 중국 등에서 기술자들과, 1000마리의 코끼리.인부 20여만명이 동원되었는데, 라자스탄의 마크라나에서

채취된 엄청난 규모의 대리석과 내부 장식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에 수입된 값비싼 내장재들을 사용하여 세계 제일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샤 자한은 타지마할과 같은 건축물을 더 이상 못 짓게 하기 위해 페르시아와 터키에서 온 이슬람 장인들의 손가락을 잘랐다고 한다.

 

타지 마할의 앞문, 타즈 마할 장식의 백미,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타지 마할의 장식에는 모자이크의 일종인 피에트라 두라 기법이 사용됐다, 르네상스 시대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피에트라 두라는 대리석에 꽃 등의 문양을 판 뒤 그 홈에 각각 다른 색의 돌이나 준 보석을 박아 넣는 것, 터키와 중국, 러시아에서

입된 색색의 돌들이 순백의 대리석과 어우러져 오묘한 빛을 발한다. 대리석에 꽃조각만 있는 것은, 이슬람교의 특성상

움직이는 동물이나 신상 등은 조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건물 앞에는 짜르 박(Char Bagh)이라는 형식의 이슬람 정원이 있다. 정원을 수 많은 정4각형으로 쪼갠후 사이 사이 수로를

건설한 짜르 박 정원은 이슬람의 낙원사상을 담고 있다. 물은 가로 57mㆍ세로 67m 크기로, 네 귀퉁이에는 '미나레트'라고

불리는 40m 높이의 탑이 세워져 있고, 지붕 위에 있는 흰색의 뾰족한 돔은  모두 22개인데, 이는 타지마할을 완성하는데

걸린 22년을 뜻한다고 한다. 내부로 들어서면 대리석으로 만든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관이 놓여 있다. 여행자들이 볼 수 있는 관은

빈 관이고, 실제 관은 지하의 묘에 안장돼 있다. 그 외 샤 자한은 재위 기간에 아그라의 타지마할 아그라성, 델리의 레드포트

자마 마스지드 인도를 대표하는 수준 높은 건축물을 지었다.

▼ 타지 마할 입구 - 대리석과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무케두아르 정문

▼ 아침 햇살에 찬란하게 드러낸 타지 마할은 상상했던 것 보다 크고 웅장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사 쟈한은 장신구를 팔던 바누 베굼을 시장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 전쟁터에서 죽어 가는 아내와 마지막으로 한 세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든 타지 마할은 왕관의 마할이란 뜻이다.

그 약속은 ‘앞으로 결혼하지 않을 것’, ‘아내의 기념관을 지을 것’, ‘막내아들을 아그라의 지배자로 삼을 것’ 이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타지마할을 `영원의 얼굴에 떨어진 눈물 한 방울`

  영국의 작가 키플링은 `모든 순수한 것들의 화신`이라고 표현했다네요

당시 이태리에서 유행했던 상감기법인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바깥 벽면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가르침과

화려한 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건물 안쪽 벽 역시 다채로운 꽃무늬와 보석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어두컴컴한 무덤안에 빛이 들어와 드러난 문양이 몹시 아름답다.

 

 

▼ 지붕 천장의 무늬

▼무덤안은 사진 촬영 금지라 못 찍고

 

▼ 멀리 야무나 강 건너 아그라성이 아스라히 보인다.

▼ 아쉬움을 접고 돌아 나오는데 수로에 물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엎드렸다가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관광객 삐끼들에게 걸려 넘어져

  무릎과 팔의 시퍼런 멍이 돌아올 때까지 가시지 않았다.

▼ 타지 마할 서쪽에 있는 건물은 이슬람 사원이다. 타지 마할에는 4 개의 문이 있는데, 이 중 세 개는 가짜라고 한다.

▼내국인은 25루피인데 외국인은 750루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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