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 - 코요아칸의 푸른집에서 프리다 칼로(Frida Kahlo de Rivera)의 일생을 보다.
짙은 일자 눈썹, 깊은 눈, 야무진 입, 틀어 올린 검은 머리, 무표정의 프리다 칼로(Frida Kahlo de Rivera)의 흔적을 보다.
6살 때 척추성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발이 장애고 18살 대학생 때 자동차 사고로 부서진 전차의 쇠막대기가 척추와 골반을 관통하고
허벅지로 빠져나오는 바람에 일곱 번의 척추수술을 포함 서른두 번의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칼로의 엄마가 사고 후 오래 누워 있는 딸을 위해 침대에 누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거울을 달아 놓은 방. 아이 낳기를 원해서
만들어 놓은 아이 방. 그러나 세 번의 유산을 겪으며 소원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리고 평소 착용했던 도구들과 옷이 전시된 방.
마직막 작품인 멕시코인들이 좋아한다는 수박 그림엔 인생이여 영원하라는 글도 있었다. 공원처럼 꾸며진 작은 공간. 200여 점의
작품 가운데 55점의 자화상이 있는 푸른집에는 그녀의 고통과 절망적인 상황을 볼 수 있는 방과 그 고통들을 이기고 예술로
승화한 흔적도 만날 수 있다. 멕시코인들이 그런 그녀를 많이 사랑한다고,
1939년 피에르 콜 갤러리에서 열린 《멕시코전》에 출품하여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등으로부터 초현실주의 화가로 인정받았으나 프리다 칼로 자신은 자신의 작품 세계가 유럽의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멕시코적인 것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다.
'내 인생에 두 번의 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전차 사고이며 다른 하나는 디에고이다.'
“나의 평생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아픈 것이 아니다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 있음이 행복하다.'
프리다는 폐렴증세의 악화로 고통과 고독 속에서 보낸 47년의 슬픈 생을 마쳤다.
일기 마지막에는‘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2016년 여름 8월 예술의 전당에서 프리다 칼로와 그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전시를 보다.
`나는 나 자신을 그린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내면에 담긴 고통ᆞ슬픔과 사랑ᆞ추억등
그녀만의 예술세계를 들여다 보다. 이번 여행 선택에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한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1907~ 1954)는 소아마비와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한데 21살 차이가 나는 디에고와 결혼. 사생활이 문란한 남편이
동생하고도…, 그래서 이혼을 하지만 나중엔 다시 디에고와 재혼. 47세에 폐렴으로 죽은 멕시코의 국보급 화가.
▼ 입구
▼표를 받아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표도 옷에 붙이고,
▼ 프리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유태계 독일인 아버지 빌헬름 칼로(기예르모 칼로)와 스페인과
인디오의 혼혈(메스티조)인 어머니 마틸데 칼데론 사이에서 태어났다.
▼프리다 칼로가 그린 결혼식 즈음의 그림
프리다 칼로에게 있어서 디에고 리베라는 배우자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녀에게 그는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이자 증오였으며
기쁨이자 지극한 고통이었고 갈망이자 짐, 희망이자 절망, 연인이자 적이었다. 리베라와의 결혼은 운명이고 필연이었지만, 그것이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리베라는 결혼생활 동안 칼로의 삶 전체를 지배했고, 고독과 고통에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칼로에게 화가로서, 혁명가로서의 인생도 함께 주었다.
▼사진작가였던 프리다 칼로 아버지. 유태계 독일 출신이다.
▼ 멕시코가 사랑한 벽화 화가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1886~1957)
"위대한 예술은 꽂ᆞ가지ᆞ과일ᆞ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가지고 특정장소에서 자라는 나무와 같다. 좀 더 원시적인 미술은 자연으로 부터
기인하기 때문에 전 세계에 속해 있다. 이것이 나의 원시적인 작품에 대한 비밀이며 미켈란 젤로ᆞ세잔ᆞ쇠라ᆞ 르누아르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비밀이다. 그리고 내 작품에서의 가장 큰 비밀은 멕시코적이라는 것이다."
영원한 바람둥이. 리베라는 미술에 대한 열정뿐 아니라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여인들을 사랑했으나, 자주 업신여겼다.
리베라의 말에 따르면 그는 1911년에 러시아의 미술가 안겔리네 벨로프와 결혼했다고 한다. 둘의 관계는 십 년간 지속되었다.
결혼 생활 중에도 리베라는 끊임없이 바람을 폈다. 그 후 그는 과델루페 마린과 재혼했지만, 프리다 칼로를 만나면서 5년 만에 다시 파경을
맞게 되었다. 1929년 칼로와 결혼하지만 그의 바람기는 여전해, 둘은 결국 1939년에 이혼했다. 그러나 1년 후 둘은 재결합을 해,
칼로가 세상을 떠나는 1954년까지 14년간을 함께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 트로츠키 와의 만남
▼젊은 시절의 프리다 칼로 - 상당히 매력적이다.
▼프리다 칼로의 방
▼침대서 누워서 볼 수 있게 거울도 보이고
▼ 주방과 물건들
▼시계가 현재 시간을 알려 주네~
▼ 프리다 칼로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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