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어느 이별에게 - 이효녕

내 눈물이 빗물로 내리는가

아무도 없는 빈들 걸어가면

봄이면 꽃으로 피어나는 사람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진 사람

가을이면 낙엽 되어 떠나는 사람

사랑하면서 이별이 없는 줄 알았더니

내 눈물이 빗물로 내리는가

사랑하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으니

이별이여

이제 내 눈물이 비로 내리지 않기 바란다

이제 내 눈물이 이별의 비가 아니기를 바란다

가로등 불빛에 길게 그림자를 남기며 떠나간

정류장에서 더는 서성거리지 않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것은 그리움을 만드는 일

사랑하면서 찌꺼기가 쌓이면 눈물로 씻는 일

눈물이 비로 내려 추억을 아름답게 꽃 피는 일

아무도 없는 빈들 걸어가는 사람이여

반응형
728x90
반응형

오월(五月) -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 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반응형
728x90
반응형

 

어디까지 가야 그대입니까 - 김현태​​

저 길모퉁이 돌아가면

그대 숨결 성큼 오시려나

가슴 언저리에 가슴을 묻고

발길을 재촉합니다

여기인가

그대 사라진 끝이 여기인가 했더니,

어느새 길은

또 하나의 모퉁이를 잉태하고

지평선 너머로 줄행랑칩니다

길의 끝은 있기나 한가

그대의 끝은 어디인가

언제나 그렇듯 모퉁이를 돌아서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건

몇 발자국 앞서 간 내 그리움뿐

더디게, 참 더디게

견디며, 참 오래 견디며

그토록 발이 부르텄건만

그대는 없고

바람에 기댄 민들레 한 송이만

그대여, 어디까지 가야 그대입니까

오늘도 못난 사내 하나

길모퉁이에서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

반응형
728x90
반응형

 

그대 잊은 적 없다 - 최재영

꽃이 진다

꽃잎이 눕는다

이들 다녀간 자리에

찬 서리 내린다

꽃지고

풀잎 쓰러져도 나는

한 번도

그대 잊은 적 없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