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사랑이 내게로 왔을 때 - 김재진

 

사랑이 내게로 왔을 때

나 말 없는 나무로 있고 싶었다

 

길 위에 서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

해님은 또 밤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빛 고운 열매. 등처럼 걸어둔 채

속으로 가만가만 무르익고 싶었다

 

다시 사랑이 내게로 왔을 때

나 누구냐고 넌지시 물어보며

 

감춰둔 그늘 드려 네 안으로

소리 없이 그윽하게 스며들고 싶었다

 

그만 사랑이 내게서 떠날 때

닫혔던 속 그제야 열어뵈며

나 네 뒤에 오랫동안 서 있고 싶었다

반응형

'내 마음의 풍경 > 사진과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탁 - 나태주  (0) 2023.10.05
하늘 - 박두진  (0) 2023.09.29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 조병화  (1) 2023.08.15
커피를 마시며 - 신달자  (0) 2023.08.04
꽃의 이유 - 마종기  (0) 2023.08.02
728x90
반응형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 조병화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였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것을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사세

반응형

'내 마음의 풍경 > 사진과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 - 박두진  (0) 2023.09.29
사랑이 내게로 왔을 때 - 김재진  (0) 2023.09.18
커피를 마시며 - 신달자  (0) 2023.08.04
꽃의 이유 - 마종기  (0) 2023.08.02
그리움 - 나태주  (0) 2023.08.02
728x90
반응형

커피를 마시며 - 신달자

 

커피를 마시며

견디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신다

 

남 보기에라도

수평을 지키게 보이려고

 

지금도 나는

다섯 번째

커피 잔을 든다

실은

안으로

수평은커녕

몇 번의 붕괴가

살갗을 찢었지만

 

남 보이는 일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해서

배가 아픈데

아픈데

 

깡소주를

들이키는 심정으로

아니

사약(死藥)처럼

커피를 마신다.

반응형
728x90
반응형

꽃의 이유 - 마종기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젖은 바람 소리.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