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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oto의 긴카쿠지(金閣寺 금각사)

 구조물 전체가 금칠이 되어 있어 긴카쿠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1397년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세운 별장이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로쿠온사(鹿苑寺)라는 선종 사찰로 바뀌었다. 1950년 방화로 소실 되었다가 재건되었다. 무로마치시대 전기의 기타야마문화[北山文化]를 상징하는 3층 건물로서 각층마다 건축양식의 시대가 다르다. 1층은 후지와라기, 2층은 가마쿠라기, 3층은 중국 당나라 양식으로 각 시대의 양식을 독창적으로 절충하였다. 1층은 침전과 거실로 쓰이고, 2층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셔두었으며, 3층은 선종 불전이다. 이 가운데 2층과 3층은 옻칠을 한 위에 금박을 입혔다. 1950년 한 사미승에 의하여 불에 타 없어졌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5년에 재건한 것이다. 금박은 1962년에 이어 1987년에 다시 입혀졌으며, 이후 매년 교토 시민들의 세금으로 보수된다. 긴카쿠지가 일본 내에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이를 소재로 하여 1956년에 쓴 장편소설 《금각사(金閣寺)》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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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부[京都府] 남부의 교토분지에 있는 고도(古都). 교토(일본어: 京都 (きょうと))는 일본의 역사적인 도시이다.
간무 천황은 784년(엔랴쿠 3년) 야마시로 국의 나가오카(長岡)로 수도를 옮겼다. 그러나 나가오카쿄(長岡京)의 조영은 건설 책임자인 후지와라노 다네쓰구(藤原種継)가 암살되어 진전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와케노 기요마로(和氣淸麻呂)의 건의를 받아들여 794년(엔랴쿠 13년)에 가도노 군(葛野郡)의 한 지역을 택하여 수도를 옮기고, 헤이안쿄라 하였다. 오늘날 교토 부 교토 시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헤이안쿄는 중국의 풍수에 따라 설계된 도시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동쪽의 가모가와 강(鴨川)과 서쪽의 가쓰라가와 강(桂川)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중국의 장안성을 모방하여 동서 4.5 km, 남북 5.2 km의 장방형으로 구획되었으며 북단 중앙에 궁성인 다이다이리(大内裏)를 설치하였고 시가의 중심에는 주작대로(朱雀大路)를 두어 대로 좌우에 좌경(左京)과 우경(右京)을 두었다. 헤이안 시대의 율령제가 형해화되면서 점차 본래 영역에서 벗어나 가모가와 강과 다이다이리(大内裏)·고쇼(御所)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였다.

▼ 헤이안 신궁(일본어: 平安神宮へいあんじんぐう))은, 교토 부 교토 시 사쿄 구에 있는 신궁이다. 1895년(메이지 28년)에 헤이안쿄에 수도를 옮기고 나서 1100년 지난 것을 기념하고, 당시의 일본 천황인 제50대 간무 천황을 모시는 신사로서 창건 되었다.


헤이안신궁(平安神宮)

간무덴노[桓武天皇]의 헤이안 천도 1,100주년을 기념하여 1895년에 건립하였다. 에도시대에 실질적인 정치적 중심이 도쿄로 옮겨지고, 1868년에는 수도가 도쿄로 옮겨지자 교토는 상징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에 교토의 교육·문화·산업·생활을 부흥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는데, 그러한 정책의 하나로 이 궁을 설립하였다. 넓은 신사 경내가 신전을 둘러싸도록 하였으며 신전은 헤이안시대 왕궁의 형식을 본떠 만들었다. 붉은 옻칠을 한 기둥과 초록색의 기와가 특징적이다.

1895년에 있었던 헤이안천도 1,100년을 기념해 세운 신사로, 헤이안천도 당시의 일왕이었던 간무 일왕을 모시고 있다.

이곳의 도리이(鳥居)는 일본에서 가장 크다고 하네요. 헤이안진구의 하이라이트는 일본식 정원 신엔(神苑).

무료인 경내에 비해 입장료 600엔을 따로 내야하지만,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여·행·메·모
가는 방법 -
교토시버스 5번, 100번, 206번 교토카이칸비쥬츠칸마에(京都会館美術館前) 정류장에서 하차

오픈 시간 - 오전 6시~오후 6시, 신엔(神苑) : 오전 8시30분~오후 5시30분
http://www.heianjingu.or.jp/  <==== 공식 홈페이지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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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사 & 산넨자카(三年坂)와 니넨자카(二年坂) 

사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가 석재 수구를 따라 세 개의 물줄기로 갈라지는데, 각각 지혜와 사랑, 장수를 의미한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해 마셔야 된다고 한다. 만약 욕심을 부려 세 개를 다 마시면? 조심하시라. 바보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니 말이다. 인간의 지나친 욕심을  경계한 것이리라.

절에서 내려 오는 길에 옛 목조건물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가장 교토다운 길, 산넨자카(三年坂)와 니넨자카(二年坂)를 만나게 된다.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넘쳐나 한 번 들어서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곳이다. 하지만 구경하는 데 정신 팔려 넘어지면 안 된다. 이름 그대로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3년, 니넨자카에서 넘어지면 2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 산넨자카(三年坂)와 니넨자카(二年坂)

▼ 잉어는 아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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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3大 庭園의 하나인 오카야마의 고라쿠엔 II

고코엔[]이라고도 불린다. 에도시대에는 고엔[]이라고 불렀는데, 1871년 고라쿠엔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총면적은 133,000m²으로, 도쿄돔의 약 3.5배 넓이이다. 다이묘(名)정원으로, 미토[]의 가이라쿠엔 (偕園)가나자와[]의 겐로쿠엔(園)과 함께 일본의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오카야마 영주였던 이케다 미쓰마사(政)부하인 쓰다 나가타다(忠)에게 명하여 지어졌다. 1687년 착공하여 14년의 공사 끝에 1700년 완공되었다. 영주가 손님 등을 접대하던 엔요정(亭)이라는 건물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정원은 1884년 오카야마현 소유가 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1945년 태평양전쟁 당시 오카야마시가 공습을 받았는데, 그때 정원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1952년에는 국가가 특별 명승지로 지정하였으며, 1960년 엔요정(亭)을 재건하고, 1967년에는 모든 건물을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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