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2013-07-01  7박8일의 여행을 끝내고 인천공항으로

 

빼제르 폴코바 공항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가 또 1시간 30분 연기되었다. 운행 정지 중인 모노레일 위를 걸어간

2층 비좁은 공항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화장실은 물론이고 볼 것도 살 것도 없다. 역시 인천공항만큼 쾌적하고 시설이 좋은 곳은 없다.

 

1시간 30여 분 날아서 도착한 모스크바 세레메체보 공항 면세점에서 벨루가 철갑상어 500ml 보드카를 44유로에 두 병을 사고

리가 타야 할 게이트에 오니 30분의 여유 밖에 없다. 카톡이 켜지길래 카페에 들어가 핸폰으로 찍은 사진 한 장과 함께 메시지를 쓴다.

 

비행기 안은 올 때보다 사람이 적어 좌석의 여유가 많아 편한 자리로 옮겨 앉았다.오후 9시 40분인데 막 해가 지려고 하는

공항 하늘이 곱다.9시간여 날아 한국에 도착하면 7월 2일 화요일 11시 10분 전.후일 것이다.

 

이번 러시아 여행의 아쉬움이라면 모스크바 아르바츠 거리와 상트 빼제르부르그의 넵스키 대로를 못 걸어 본 것일 것이다.

또 에르미타슈 박물관에서 루벤스의 그림을 자세히 못 본 것과 예까제리나 궁전의 호박방이다.

크레믈린 궁안에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방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동토의 땅인 줄만 알았던 모스크바!아름다운 문화와 향기를 아마도 한동안 기억할 것이며 사랑하게 되리라.

 

*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여행 일정을 잘 이겨낸 나에게도 파이팅을 보낸다!

 

백야는 위도 약 48˚이상의 고위도 지방에서 한여름에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현상이다.

 

반응형
728x90
반응형

모스크바 붉은광장(Krasnaya Ploshchad)의 성 바실리 대성당.국립역사박물관.

부활의 문.옛 레닌박물관

 

성 바실리 대성당은 '중재하는 성모 마리아 성당'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타타르족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때 마다 성자의 이름을 따서 하나씩 성당을 추가 해

나가는 식으로 건축을 하면서 오늘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바실리 성당이 된것은 9번째 승리를

얻은날이 바실리 성인의 축일이라 그의 이름을 따게 되었는데 바실리 성인은 자신의 맏아들을

아버지가 스스로 죽이게 될것이라는 이반대제의 비극을 에언한 성인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구엘공원의 가우디의 헨델과 그레텔 과자집이 생각난다.

 

▼상크트 바실리 대성당

붉은 광장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여 년간 러시아를 점령하고 있던 몽골의 카잔칸을 항복시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반 대제의 명령으로 지어졌다. 그리스 정교 사원은 가장 러시아적이면서도

특색 있는 건축물로 알려져 있는데 다양한 색채와 무늬를 자랑하는 9개의 돔 지붕으로 이루어졌다.

이반 4세는 완공된 성 바실리 대성당의 모습에 반해 이런 아름다운 건물을 두 번 다시는 못 짓게끔

건축을 담당했던 '바르마'와 '보스토니크'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하는 전설이 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보스트니크가 완공 이후에도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미닌과 포자르스키 동상

성 바실리 사원 앞에는 1612년, 폴란드의 침입으로부터 모스크바를 지켜낸

니즈니 노브고르드 출신의 정육점 주인 "미닌"과 수즈달의 대공이었던 "포자르스키"

두 사람을 기념하는 동상이 서 있다. 원래 광장의 한가운데 서 있던 이 동상은 1936년,

붉은 광장에 레닌의 묘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장소로 옮겨졌다.

 

 

 

역사적으로는 상업광장·화재광장 등으로 불렸다가 17세기 말부터

아름다운(크라스나야)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크라스나야에는 ‘붉은’이라는 뜻도 있다).

현재 메이데이 등의 시위행사나 사열식이 행해진다. 크라스나야 폴로시차지(붉은 광장)라고

부르게 된 것은 17세기 후반의 일이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단장된 것은 19세기 말 무렵이었다.

 

 

▼국립역사박물관

 

 

부활의 문

 

옛 레닌 박물관

 

 

 

 

 

 

반응형
728x90
반응형

 

거리는 차이콥스키, 푸시킨, 톨스토이 등 예술사를 뒤흔든 인물들의 동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2만여 개의 크고 작은 동상이 있는 곳.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여기서는 동상을 남긴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역설적으로 동상이 없는 인물은 안 유명하다는 이야기~ㅎ

 

▼길에서 아이들과 젊은이들 보기가 어렵다

 

 

 

 

 

 

 

▼길거리 곳곳에 보이는 동상. 모스크바에만 2만여개란다.

 

 

 

 

 

 

 

반응형
728x90
반응형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 (Ensemble of the Novodevichy Convent) 수도원

 

오전에 크레믈린 궁을 보고 점심으로 현지식인 비트(빨간순무) 스프와 돼지고기 커틀렛을 먹었다.

그리고 간 곳은 어제 밤에 본 노보데비치 수도원이다.

표트르 대제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한 소피아 공주가 갇혀 살던 곳이다.

 

노보데치 수도원은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정교회의 수도원으로서 16~17세기 건립되었다.

모스크바강(江) 가까이 있으며, 1524년 모스크바 대공(大公) 바실리 3세가 폴란드령이었던

스몰렌스크를 탈환하자 이를 기념하여 건립한 것으로, 전쟁중에는 요새의 역할을 겸했다.

차르 일족이나 명문귀족의 자녀가 은둔하거나 유폐당하기도 했는데, 1682년 표트르 1세의

이복형인 이반 5세와 이복누나인 소피아 공주가 그에 대한 음모를 꾸미다가 실패하자

소피아 공주가 이 수도원에 유폐당한 적이 있다. 교회당 내부에는 이른바 모스크바파(派)와

노브고로트파 화가들이 그린 성화상(聖畵像)이 많으며, 스몰렌스크 대성당,표트르 성당,

17세기에 건립된 대종루(大鐘樓), 1km에 달하는 웅장한 성벽 등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이 있다. 러시아혁명 후인 1922년 이 수도원은 박물관으로 지정되고, 1934년 이래

국립역사박물관의 분관으로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또 신·구(新舊) 두 곳의 부속묘지에는

제정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니콜라이 고골·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Vladimir Mayakovskii)저명한 학자 ·작가 ·정치가 들이 묻혀 있다.

모스크바 남서쪽에 있는 노보데비치 수도원(Ensemble of the Novodevichy Convent)

16, 17세기에 이른바 ‘모스크바 바로크 양식(Moscow Baroque style)’으로 건축되었다.

 

------------------------------------------------------------------자료에서 펌

 

▼ 러시아 성당에서 보게 되는 팔각십자가는 전형적인 러시아 정교회의 십자가이며 그 아래에

쿠폴이라고 하는 양파모양의 둥근 지붕이 놓여 있다. 쿠폴은 대개 교회 규모의 크기에 따라

1개 또는 5개인 것이 보편적이며 5개인 경우가 더 큰 경우다.

쿠폴은 황금색, 녹색, 흑색, 파란색 등 색깔이 다양하며 특히 황금빛 쿠폴이 햇빛을 받을 경우

매우 찬란한 모습을 발해 준다. 쿠폴 아래에는 ‘바라반’이라고 하는 원통형 구조물이 있는데

태양빛을 받아들이도록 창문이 나 있는 곳도 있다.

 

 

 

 

 ▼밖에서 본 종루와 성당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