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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의 모습을 갖춘 일본 효고현의 히메지성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 있는 일본의 성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히메지성은 흰색의 외벽과 날개 모양의 지붕이

마치 백로가 날아가는 형상이라고 하여 시라사기성城(백로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히메지성은 1333년경에 처음 지어졌으며,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천수각을 증축했다. 그리고 160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대개축을 시작하여

1609년에 완성했다.현존하고 있는 건물의 대부분은 이때 지어졌다. 나무로 지어진 히메지성은 불에 의한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화력(火力)을 이용한 무기가 발달할 때마다  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히메지성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흰색의 회벽칠도 불에 강한 회반죽을 이용하고 성벽을 따라 해자(垓子: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

를 설치해 적의 접근을 막고, 미로를 만들어 놓았다. 적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성벽을 부채꼴로 만들어 놓는가 하면 천수각으로

가는 길 곳곳에 함정을 만들어 두었다. 총과 화살을 이용해 숨어서 공격할 수 있는 장소가 기록에 의하면 무려 2,522곳이었다고 하며,

현재 287곳이 남아 있다. 히메지성의 소천수각에서 대천수각으로 통하는 복도는 좁고 구불구불하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 가도록 배치하여

침략자가 당황하는 심리적 효과를 노렸다. 대천수각과 소천수각은 복도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구조는 다른 일본의 성들 중 유일하다고 한다.

일본에 있는 대부분의 성들은 잦은 전쟁으로 인해 소실된 후 재건되었지만, 옛 모습 그대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히메지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적장들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이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이름을 듣게 되고 흔적을 만나니 잠시 역사 속으로 여행을 다녀 온 것 같다.







1333년경에 처음 지어졌으며,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수각을 증축했다.

160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위 이케다 테루마사가 대개축을 시작하여 1609년에 완성했다.

1609년 이케다 데루마사가 완성한것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히메지성 천수각 - 백로가 날개를 펼친 형태라고 하여 백로성이라고 알려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흰색의 외벽과 날개 모양의 지붕이 마치 백로와 같아서 시라사기성(白鷺城)이라고도 부른다.

▼히메지 성 대 천수각 입구 - 일본의 학생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히메지 성의 하노문 

 하노문의 오른쪽 기둥 주춧돌은 등롱의 받침이었으나 축성할때 석벽으로 전용되었다.

▼히매지성의 오기노코하이성벽

부채꼴 모양으로 쌓은 성벽으로 모서리부분은 큰 장방형 돌을 교차하여 쌓는 산기즈미 방식을 취하고 있다.

▲ 적이 잘 올라오지 못하도록 만든 부채꼴 성벽.

우물

히메지성 대천수각  내부의 계단 - 한 사람이 겨우 오르 내릴 수 있는 계단으로 되어 있다.

▼히메지성 내부

히메지성의 천수각의 오사카베 신사 -  천수각의 최상층에 있는 지주신을 모신 신사로 성을

축성할 때는 성밖으로 밀려났으나 재앙을 두려워하여 다시성내로 옮겨져 왔다.

히메지성 [姬路城, Himeji-jo] - 고기모양 히메지성 지붕에 달린 상징물로 성채의 화재를 막아준다고 한다.

▼히메지성의 누노문

▼히메지 성 기와 문양

히메지성의 동물형상의 지붕장식 - 머리는 사자형상이며 몸은 뿔달린 물고기 모양으로 화재를

막아준다는 신화속 동물을 형상화 하였다.

▼ 히메지성의 수이문 - 히메지성의 성문과 통로는 적들을 혼란시키기 위해 미로와 같이 만들어두었다.

▼ 히메지 성 경내

▼ 성곽과 해자 -  성벽을 따라 해자(垓子: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를 설치해 적의 접근을 막았다.

▼히메지 성에서 바라 본 일본 효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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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대교
아래에서 광진구 쪽으로 본 한강일몰이다.
테크노마트올림픽대교노을빛에 물든 모습이 아름답다.
부챗살이 퍼지듯 빛의 파장도 그림 같다,
석양빛에 새 한 마리가 춤을 추듯 날아간다.
노을이 다 지고 난 다음 어슴푸레한 하늘빛도 마음에 든다.
꼭 멀리 나가야만 노을이 좋은 건 아니다.
날씨 좋은 날. 가까이 있는 한강에 나가 보자.
새벽  한강의 일출도 볼만하다는 데, 아직 나가 보지 못했다.
날씨가 풀리면 한 번 나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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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쓰던 캐논 20d 가  메뉴 조작이 조그셔틀로 되어 있고 조작법이 비슷해서 다루기가 쉬운 줄 알았는데,

EOS 5D Mark II를 막상 손에 넣고 보니 다시 익혀야 할 메뉴가 많다.
픽쳐 스타일도 설정해야 하고, 조금 더 무거워진 바디에 적응도 해야 하고
산넘어 산이다. 
우선 베란다에 피어 있는 `군자란`을 모델로 하여 스팟측광. Iso.
조리개값을 달리해서 심도도 보고 나름대로 찍어 보았다.

Lcd 창으로 보이는 화면은 이거다 싶은데 컴으로 옮기니  흔들리고 별로다.
이제 겨우 사진에 입문한지 1년여~ 초보 찍사는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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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

파인(巴人) 김동환님이 詩를 쓰고 가수 박재란이 고운 목소리로 노래한 남촌을
찾아 봄 꽃마중에 나섰다.
구례 산수유 마을을 가기에는 너무 멀어 서울에서 가까운 이천으로 정했다.중부고속도로 서이천 IC를 나온 다음 바로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조금만 가면  3번 국도가 나오고 그 길을 가노라니 가는 길 곳곳마다 도자기마을이 보이고, 도립리 쪽으로 달리다 보면 지석묘 고인돌도 보인다. 쭉 길을 따라가노라면  `산수유마을`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길 양편으로 가로수는 산수유인데 아직 어리고 좀 이른 철이라 더러더러 노란 꽃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육괴정과 커다란 느티나무 세그루가 떡 버티고 있는 백사면 도립리 마을. 원적산 기슭에 자리 잡은 이천 산수유마을은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1519년)로 낙향한 여섯 선비가 산수유를 심은 이래 수령 500년의 고목을 포함한 산수유나무 8,0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작년에는 산수유 열매가 많이 열려 마을이 온통 빨개서 장괸이었다는 ,.. 그래서 올해는 해거리로 꽃이 덜 필가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꽃이 많이 필 것 같다는 동네 아주머니의 말이다. 마악 얼굴을 내민 꽃망울이 연두빛으로 빛나고 마을 이곳저곳을 한참 돌아다니다 보니 봄햇살에 꽃은 노란색으로 피어나기 시작한다. 다음 주면 지천으로 피어 장관을 이룰 산수유 마을. 산수유꽃 군락이 아스라히 몽환적인 느낌마저 불러 일으키는 여기가 바로 남촌이고 무릉도원이지 싶다. 봄은 어느새 슬며시 곁에 다가 와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화사한 봄을 느끼고 싶다면 산수유마을을 찾아가라고 권하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느낌을 공유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이고, 
지금 살아가는 이유가 될지도 모를 테니까… ,

찾아가기

중부고속도로 서이천나들목-(3번 국도)-이천시내-(70번 지방도)-신대리-현방리-도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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