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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5일차 오후- 타지마할(Taj Mahal) 야경

 

시내 구경을 한 다음 호텔에서 잠시 쉬고 타지마할 야경을 보러 가기로 한다, 카메라 . 밧데리 . 메모리 카드 점검하랴 쉴 짬도 없다.

인도는 어댑터가 약간 달라 첫 날 많이 당황했는데, 3구 쓰는 방법이 의외로 간단하였다.

 

오늘은 오토릭샤를 타게 되어 느긋하게 거리를 감상한다, 게스트 하우스가 많다는 (그래서 그런지 빈대떡.국수,...한글 간판이 보인다.)

동네 레스토랑 5층에서 맥주를 마시며 보는 타지마할이 아주 가깝게 보인다.

 

그믐을 향해 가는 날인데다 그렇다고 별빛이 초롱 초롱하지도 않은 흐리멍텅한 날씨라 어둠 속 타지마할은 그리 빛나 보이지도 않는다,

매연과 배기 가스등의 오염으로 표면이 흐릿하게 변하는  `에칭(etching)`이라는 현상으로 나날이 훼손되어

유엔교육뮨화기구(UNESCO)에서 3년마다  청소를 하여 그나마 하얗게 보인다는 타지마할.

 

왜 그렇게 보고 싶었을까. 진한 순애보 때문이었으려나…,

 

▼ 타지마할은 보름달이 뜨는 전후 3일간 야간 개장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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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5일차 - 아그라 둘러 보기

 

오전에 악바르대제 무덤과 아그라 성을 보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 시장 구경에 나섰다.  아그라만해도 관광 도시라 조금만

길을 나서면 어린아이를 안은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 1달러를 외치며 몰려 든다. 순간 돈을 줄까하다가도 잘못하면

그들에게 둘러 싸여 헤어나기 힘들다는 가이드의 당부에 애써 모른척 하기로 한다.

 

시장 입구에서 제일 먼저 눈에 뜨인 신발 가게에서 모두 흥정하기 바쁘다. 반이나 깍은 300루피에 이쁜 신발을 고르는데,

발바닥이 시원찮은 나는 아무 신이나 신을 수 없어 포기하고, 인도는 실크나 파시미나가 싸고 좋다고 하는데, 이 건 뭐 부르는 게 값이라

밀당하기도 힘들고 해서 포기. 그냥 길 거리 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만 구경한다. 어제 저녁에 도착해서 호텔에 딸린 상점에서 맞춘

펀자비를 입은 님을 보니 나도 그럴 걸  후회가  스멀스멀~. 아무나 어울리지 않아 하고 위안해 보지만, 약간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다시 아그라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팔에다 헤나 문신을 하는 여인을 보고 이리 저리 사진을 찍어도 아무런 거부가 없다. 인도인들은 눈만 마주치면 웃어 주고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좋다.

사진 찍는 내 입장에서 좋은 면도 있지만,  자연스런 모습을 바랄 때는 오히려 안 좋은 면도 있다. 어느 님이 250루피 들여서 한 문신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보니

초보티가 역력하다. 일주일 정도 간다고 하는데 인도 여자들이 상당히 즐기는 것 같다.

다음엔 백화점. 말만 백화점이지 규모가 작고 사람도 없다. 딱히 살 것도 없어서 이리저리 둘러 보는데, 아로마 비누가 눈에 띄어서 샀다.

 

▼ 아침에 버스를 타기 전, 조금 일찍 나와서 만난 거리 풍경.

▼인도에서 많이 보게 되는 개들. 짖는 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없다. 

▼ 세계 2위 인구여서 그런지 언제 봐도 버스는 만원이다.

▼ 항상 웃는 얼글들. 인도에서 느낀 것 하나라면 그들은 보기보다 행복해 보인다는 것.

▼숙소에서 내려다 본 공립학교.

▼인도의 보통 여자들은 길 거리에 많이 안 보이는데, 가끔 보면 옥상에서 보내는 여자들이 많이 보인다.

인도인들은 전통적으로는 맨발인데,

현대에 와서는 맨발의 사람들은 별로 없다.(그러나 남인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맨발이었다) 주띠(Jutti ; jUtI)와 모즈리(Mojri) 라고 하는

신발과 마하라슈뜨라의 작은 마을을 기원으로 하는  슬리퍼 종류인 꼴라뿌리 짜빨(Kolhapuri chappal)을 많이 신는다.

▼헤나로 문신을 하면 일주일 정도 간다고 한다.

▼거침없이 그려 내려 가는 걸 보면 인도인들의 감각이 상당하다.

▼ 시내 백화점 건물 여자 화장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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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아그라 성(Agra Fort)

 

아그라 포트는 인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 무굴(Mughal)제국시대에 델리와 함께 화려하게 번성한 무굴의 수도였다.

무굴제국 시조인 바부르는 1526년께 중앙아시아에서 쫓겨 다니다 1526년 인도의 로디왕조(1451~1526)격파하고

무굴(몽골) 제국을 세웠다. 아그라 포트는 붉은색 사암의 아름다운 건물이다. 전체 둘레가 2.5km로 그리 크지 않은 궁전이지만,

성이라가보다는 아무나 강가를 따라 높게 쌓아 올린 붉은 성벽과 해자로 무장한 요새에 가깝다.

 

아크바르 대제(위대한 인물이란 뜻)가 기도 끝에 어렵게 얻은 아들인 살림(Salim, 제항기르의 아명)을 위해 지은 건물이며

힌두 양식과 아프가니스탄 양식의 건축 기법이 혼합되어 묘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곳이다. 성채 안으로 들어서면 붉은색 건물과

순백색 대리석 건물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강변을 따라 서 있다. 왕이 정무를 보던 디와니암, 왕과 왕비의 거처

그리고 왕의 개인 모스크 등으로 구성된 건물은 지금도 화려했던 흔적을 남기고 있다.

 

1565년경 건설된 아그라 요새(붉은성)안엔 백색대리석이며 다엽 아치와 상감(象嵌)된 아라베스크의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디왕 이 암(공적인 알현의 광장)의 궁전 건축과 모디 마스지드와 미나르 바잘도 있다. 모데 마스지드는 남북 57m, 동서 71m,

서쪽에 예배광장을 두고 남북 3면 방향은 아치의 회랑을 돌린 중정형(中庭形)이고 예배광장은 7개의 아치와 정면의

넓이 48m, 길이 17m이며 옥상에는 3개의 돔이 있다.

 

아그라성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해자를 건너서 아마르싱 문을 통과하는 것이다. 

   아그라성 입구의 모습. 정면에 보이는 문이 아마르싱 문.

 악바르부터 자항기르, 샤 자한,아우랑제브 황제에 이르는 150년 동안(1556~1707)무굴제국은 전성기를 누렸다.

 

왕과 왕비의 방은 밖에서만 보도록 해 놓았다.

 

▼ 그 색이 퇴색되었으나 화려한 문양과 대리석으로 된 방

 

`무삼만 버즈(포로의 탑)`에서는 야무나강 너머로 타지마할이 아련하게 보인다.  제항기르의 아들 샤자한(Shahjahan.세계의 왕)

아들 아우랑제에 의하여 유폐되어 머물렀던 8각형 모양 탑에서 8년을 지내다 1666년 1월 22일 그토록 사랑한 타즈마할의 뭄타즈 옆에 묻혔다.

▼멀리 야무나 강가엔 빨래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 까만 대리석은 왕이 앉는 자리

▼ 하얀 대리석은 수상이 앉는 자리

▼ 목욕탕

▼ 우물 - 그 속엔 비밀 통로도 있다.

▼전형적인 이슬람 양식- 아치의 문양이 공작의 꼬리를 닮았다.

▼ 왕의 접견실 - 영화 `더 폴`에 나온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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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5일차- 악바르 대제 무덤 시칸드라

 

아그라는 ‘하늘의 낙원’이라는 뜻의 아그라바나에서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여기서는 2박을 하게 되어서 조금 여유가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이 간 날이 타즈마할 휴관(금요일)이라  내일 가기로 하고

오전에 악바르 황제 무덤 시칸드라와 아그라 성을 보고  오후에는 시장과 타즈마할의 노을을 보기로 하였다.

 

* 무굴 제국의 번영 이끈 악바르 대제 무덤 시칸드라

인도의 세종대왕이라고도 불리는 악바르(위대한 인물이란 뜻)는 크지 않은 체구였지만 뭇사람을 압도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지녔고 다재다능했다.

황제이면서도 전사였으며 장인(匠人), 발명가, 신학자이기도 했고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런 악바르가 문맹이었다는 기록은 흥미롭다.

문맹의 원인을 놓고 어린 시절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선천적으로 난독증을 앓았다는 설도 있다.

▼이슬람교에서 별 장식은 천국을 상징한다.

4개의 입구가 각각 다른 종교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설계되어 악바르 대제의 종교적 관용을 나타낸다. 그 중 두개만...

▼무덤으로 가는 통로는 어두컴컴하다.

▼ 무덤에서 돈을 받고 관광객들에게 짧은 노래를 불러 준다. 그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져 길게 여운을 남기며 매우 아름답게 들린다.

▼무덤 내부의 화려한 문양들.

▼ 전에는 하얀 색이었을 텐데, 무심한 세월과 함께 변해 버린,...

 

▼이슬람교는 둥근 아치인데 힌두교는 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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