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궁전(National Palace)에서 멕시코의 유명한 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역사적 사실들을 담은 벽화를 보다.
9시면 연다는 궁전을 오늘은 10시가 되어야 개방한다고 한다. 큰 행사가 있으면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하는데 운이 좋은 편이다.
아즈텍 신전.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 Cathedral)과 소칼로 광장을 한 시간여 둘러 보고 시간에 맞추어 줄을 섰다.
큰 가방이나 베낭은 못 가지고 들어가므로 카메라만 가지고 표를 받아들고 들어갔다. 검색대를 거쳐 들어간 궁은 밖에서 본 것보다 크고 화려하다.
중앙 분수 광장을 지나 마주 보이는 계단 벽에 프리다 칼로의 남편. 유명한 바람둥이며 멕시코 지폐에도 있는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가 보인다.
2016년 여름 우면동 예당에서 열린 전시를 보고 알게 된 화가 (사실 그 이전에는 들어 본 기억이 없다)라 생소하지는 않았다.
계단 앙편으로 빼곡히 그려진 그림은 그냥 멕시코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것외엔 거기 나오는 신부도 위인도 이름이 생소하니 사실 보고 들어도 그때뿐이다.
알아본 것은 계단 왼쪽에 그려진 프리다 칼로 정도였다. 다음 일정 때문에 바쁘게 듣다 보니 따라다니기도 벅찼다. 그러나 공간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해 놓은 벽화의 위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오면서 화장실 가다 보니 다른 건물 계단에도 벽화가 보인다.
그래, 멕시코시티 소칼로는 하루 정도 여유 있게 봐야 하는구나. 그냥 보고 간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겠다 위안을 삼는다.
벽화는 1929년에 그리기 시작한 이 작품은 그에게는 최고의 작품으로, 장대한 멕시코 역사를 모두 담아냈으며 오른쪽 벽으로부터
멕시코 밸리(Valley of Mexico) 시대의 화려함을 시작으로 테오티와칸, 뚤라 등의 고대도시의 이상적인 모습, 멕시코 역사를 통해
거쳐온 혁명, 독립, 전쟁, 식민시대, 종교 등의 대부분의 역사적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1886년 12월 8일, 멕시코 - 1957년 11월 멕시코 과나후아토에서 출생하였다. 쌍둥이로 태어났으나 1살 때 형이 죽고 어머니는 신경쇠약에 걸려
유모에게 위탁되어 자랐다. 어린시절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을 나타냈으며, 10세에 산카를로스미술학교에 들어가서 약 6년간 교육을 받았다.
이 당시 멕시코의 민중예술을 이끌었던 화가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José Guadalupe Posada 1852~1913)를 만나 멕시코 민중예술의 대한
그의 사상과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프라드호텔의 대벽화 《아라메다 공원의 일요일의 꿈》(1948) 《헬렌 윌스 무디의 초상》
(1930) 《농민지도자 사파타》(1931) 등과 중앙정청, 교육부, 차핑고농업학교 등의 벽화 및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주식거래소의 장식화 등이 있다.
작품의 특색은 멕시코 민중에 대한 애정이 넘쳐 흐르며, 유럽회화의 전통을 멕시코의 전통에 결합시키려 한 점에 있으며,
멕시코 근대회화의 4대 거장, 즉 리베라, 시케이로스, J.C.오로츠코, R.타마요 중에서도 가장 멕시코적인 화가로 평가받는다.
▼분홍색 출입증 카드를 목에 걸고 ~
▼ 마주 보아는 광장을 지나 계단으로 가면
▼ 멕시코 문명의 탄생부터 역사가 그려진 벽화가 보입니다.
▼ 벽화 중앙에 멕시코의 상징인 독수리가 선인장을 밟고 서서 뱀을 부리로 물고 있다.
‘멕시코의 구원과 인디오의 전통, 새로운 국가의 출현’의 상징이라고, 코르테즈 도착 전 아즈텍은 오랜 가뭄, 메뚜기떼, 흉작 등으로
주변국을 침략하여 대규모로 인신공양을 자행했고, 코르테즈가 도착했을 때, 주변에서 자청해서 동맹을 맺고 아즈텍을 멸망시키자고 했었다 한다.
중앙 왼쪽 맨 아래 스페인을 도와 아즈텍과 싸우는 인디오들.
▼ 그림의 하단은 스페인 기병대의 아즈텍 정복 전쟁 장면.
▼ 오른쪽 에 약간 보이는 그림이 스페인 이전 시기 (pre-Hispanic)
▼ 아즈텍의 전설 중에 깃털 달린 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 신왕 케찰코아틀은 자신이 다스리던 톨텍 백성들을 떠나며
“때가 되면 나는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수염을 달고 하얀 얼굴을 한 자들과 함께. 그 동쪽 바닷가에서”라는 말을 남겼다.
아스텍의 황제 목테수마는 코르테스를 케찰코아틀이라 확신하며 그를 반겨 극진히 대접했다.
오른쪽 상단의 하얀 두건과 푸른색의 인물이 아즈텍의 황제 목테수마 ‘케찰코아틀'은 태초의 두 신에게 태어난 4신 중 하나로
옥수수와 현생 인류의 창조자로서 숭배되었다. 반면 '인간 케찰코아틀'은 신관, 즉 왕이다. 신관왕 케찰코아틀 중 유명한 것은
툴라의 '토필친 세 아카틀 케찰코아틀'로, 설화에서 그는 테스카틀리포카와의 전쟁에 패해 물러나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임을 예고했다.
여기에서 맥시코의 비극이 싹이 튼다. 케찰코아틀 은 남미에 서식하는 희귀 새 '케찰'과 뱀을 뜻하는 '코아틀'의 합성어로
' 날개 달린 뱀이라는 뜻이며, 마야인에게 문명을 전파한 외지에서 온 내방자로 표현된다.
▼ 스페인 이후 시기 (pre-Hispanic) 가운데 벽화
▼ 뱀을 잡고 있는 독수리는 아즈텍 의 새로운 도시 테노치티틀란의 상징이다. 아즈텍 건국신화에 등장하고 멕시코 국기에도
그려진 뱀을 문 독수리가 선인장 위에 앉아 있다. 그 아래 아즈텍 사제(긴 검은 머리)가 스페인 병사의 심장을 꺼내 들고 있다.
▼ 큰 독수리 아래 입을 벌린 독수리 그림은 쿠아우테목(Cuauhtémoc, 1502년 - 1525년 ) 또는 과티모신(Guatimozin) 은
아스텍 제국의 제11대 황제로 마지막 황제를 나타낸다고,
▼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무력으로 정복한 다음 학살과 인간 사냥, 노예, 전염병 전파로 인하여 많은 인디오들이 희생됐다.
▼ 그림에서 왼쪽 상단에 있는 하얀 수염의 인물은 합스부르크가의 오스트리아 대공, 멕시코의 막시밀리안 황제다 .
▼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 신부(1474.8 ~ 1566.7.17) 가 인디오를 안고서 십자가로 정복자를 막고 있다.
그는 인디오를 옹호했지만 흑인노예를 들여 오는데 일조를 했다.
▼가운데 머리 벗겨진 하얀 머리의 인물은 미겔 이달고((Miguel Hidalgo) 신부다. 노예를 상징하는 체인을 끊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원주민과 메스띠조를 지휘하여 독립운동의 불길을 일으켰으나, 곧 처형되었다고 한다. 돌로레스의 절규 - 1810년 9월 16일 돌로레스에서
이달고 신부의 주도로 일어난 반란은 멕시코 독립운동의 발단이 되어, 후에 이 날은 멕시코 독립기념일이 되었다.
▼ 미겔 이달고 신부 (Miguel Hidalgo) 신부 ( 이달고는 스페인어: Hidalgo)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귀족 신분을 지칭하는 낱말이다.)
이달고 신부 아래 신칼을 뻗고 있는 인물은 코르페스와 말린체의 아들 "El mestizo"라고 불리는 Martín Cortés 말린체는 원주민여자로
스페인 침략시 코르페르를 도와 아즈텍 멸망에 기여한 인물로 최초의 혼혈을 낳은 여자이며 혼혈이 60퍼센트 이상인 멕시코에서
메소티소(mestizo) 의 어 머니라 불리운다. 재미있는 건 코르테즈의 적자도 이름이 Martín 라고,
▼ 멕시코 독립영웅인 미구엘 이달고 신부옆에서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가 흰색 깃발을 들고 있다.
그 아래 흰옷을 입은 농민군들은 이 영웅들을 바라보고 있다.
▼ 멕시코 혁명의 농민군 지도자. 토지개혁 선구자. 사파타(Zapata, Emiliano 1879~1919) 가들
‘TIERRA Y LIBERTAD(토지와 자유) ’라는 멕시코 혁명의 슬로건이 쓰인 붉은색 깃발을 들고 있다.
빈농들과 공동체 농민(인디오)을 이끌고 멕시코 혁명에 참가, 그 승리에 공헌했고 그 뒤에도 중앙정부에 대하여 무장투쟁을 계속했다.
그의 ‘아야라 계획’도 토지개혁을 규정한 헌법 27조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 농민지도자 사파타 - 리베라 그림
▼ 훈장을 달고 칼은 든 인물은 독재자 Proflrio Diaz(쁘로피리오 디아스) 는 1876~ 1911까지 정권을 잡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 까지
33여연간 독재정치를 한 인물. 디아스의 시대에 멕시코는 대외적으로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철도망이 깔리고,
광산이 새롭게 개발되고, 항구가 만들어졌으며, 전신·전화의 통신망이 펼쳐졌다. 그러나 60년 내전을 종식시키기는 했으나
33년 동안 독재하면서 멕시코의 토지, 석유, 광산 등을 다 헐값에 팔았다고,
▼ 하안 종이(헌법)를 들고 원주민 최초 대통령 베니토 파블로 후아레스 가르시아(Benito Pablo Juárez García, 1806~ 1872)
자유주의자 아유트라 혁명에 참가하였고 알바레스 혁명정부의 사법장관에 취임하여 ‘후아레스법’을 제정하였으며,
신 헌법 제정 후 최고재판소장관에 선출되었으나 보수파의 쿠데타로 쫓겨나자 베라크루스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임시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이후 침략한 프랑스를 타도하고 대통령에 재선되어 경제부흥과 민주주의 확립에 힘썼다.
▼<멕시코 민주주의의 아버지, 베니또 후아레스(Benito Juárez) 대통령이 헌법을 들고 있다.
그 아래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와 자본가들. 농장주들이 보인다.
▼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 아래 군인은 스페인의 군인으로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초기 멕시코와 스페인의 정치, 정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웠으며 지지를 받으면서
장군계급까지 올라 격변의 40년 경력 중 많은 시간 대통령을 했었다. 22년여의 기간동안 10차례 멕시코의 대통령으로 선출 되었었다.
▼ 왼쪽에 갈색 인물 주위는 혁명으로 제거된 독재자 디아스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외국인 자본가들과 기업적 농장주들의 모습.
▼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Agustín de Iturbide, 1783 ~ 1824)는 멕시코의 정치가로 당시 멕시코 독립 전쟁의 지도자이자,
멕시코 제1제국의 초대 황제로 군림했다. 1810년 스페인에 대항해 멕시코 독립 전쟁을 일으켜 주재 스페인군 사령관으로
1821년 신부 출신의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가 이끄는 독립군을 격파했으나 이후 반기를 들어 멕시코에 주둔하던 스페인군을 추방했다.
그리고 1822년 제1멕시코 제국을 성립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아구스틴 1세라 칭했다. 그러나 중앙아메리카 원정 실패 등으로
재위 10개월 만에 산타 안나가 이끄는 공화 혁명으로 퇴위했고 유럽으로 망명했다. 1824년 재입국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총살당했다.
▼ 타락한 사제
▼ 공산주의자였던 디에고 리베라가 꿈꾼 멕시코의 미래이다. 아쉽게도 사진이 흔들렸다.
▼ 붉은 옷 을 입은 여자 위가 프리다 칼로
▼ 진녹색 옷에 목걸이를 걸고 있는 프리다 칼로, 그 아래 붉은 옷은 프리다 칼로의 동생이자 디에고의 외도 상대인 크리스티나 칼로.
공산주의 성명서를 들고 멕시코 대중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