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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쉔부른 궁전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에 자극되어 당시 독일·오스트리아에 많이 세운 바로크양식의 대표적인 대궁전으로 방이 1,441개나 되며,

그 대부분은 로코코 양식의 실내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 궁전의 기원은 17세기 초 마티아스 황제가 아름다운 분수(Schoner Brunnen)를

이곳에 설치하면서 시작되어 레오폴트 1세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을 능가하는 웅장한 궁전을 짓도록 했으나 사정상 1700년까지 5년 동안

아담한 저택만을 지었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벨베데레 궁전을 인수하는데 실패하자 1743년부터 시작하여 1749 년에 걸쳐 쉔브룬 궁전을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하였다. 1815년 빈회의 기간 중에는 연회 장소였으며 프랑스 나폴레옹의 아들인 로마 왕의 저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합스부르크가의 마지막 황제인 칼 1세가 1818년 퇴위 결의서에 서명한 곳이며, 마리아 테레지아의 여름궁전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마리 앙트와네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또한 모차르트가 여섯 살 때 놀라운 재능을 보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곳이기도 하고

오페라 '돈 주앙'을 초연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1805년과 1809년 나폴레옹 1 세가 사령부를 설치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문에서 약 180m 정도 걸어야 건물이 나오는데 건물은 '마리아 테레지아 옐로'로 알려진 황갈색으로 칠해져 있고

창문은 녹색으로 눈에 띄게 칠해져 있다.

 

총 1,440개의 방 가운데 46개만이 일반에 공개된다. 이 궁전 안의 공원은 고전과 결합한 로코코 양식의 아름다운 바로크 정원으로

툰의 샘과 로마 유적 그리고 그리스풍 석조인 글로리에테가 있다. 또 이곳에는 동물 원과 열대식물원도 있다. 17, 18, 19세기의 마차들을

모아 둔 Wagenburg가 있는데 나폴레옹의 아들이 사용하던 호화로운 사륜마차와 8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금빛 화려한 카를 6세의 마차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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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성 슈테판 성당

 

성 슈테판 대성당은 구시가의 중심지에 있으며 번화가인 게트른너 거리와 그라벤에 접해 있다.

웅장한 성당의 첩탑은 기념엽서에 자주 등장할 만큼 빈의 상징물로 대접받고 있다.

이 성당이 착공된 것은 12세기 중엽으로 부속 바실리카(정방형의 회당)는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나

1258년 대화재로 크게 손실되어 지금은 거대한 관문과 Pagan 탑만 남게 되었다.

14세기 초반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은 점차 고딕 양식으로 바뀌었다.

 

이 성당은 처음에는 러시아, 다음에는 독일의 폭격을 맞아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지만 그 후 복구를 해서 거의 옛 모습을 찾았다.

137m 높이에 화살처럼 뾰족한 첨탑이 있는 거대한 이 성당에서 1782년 모차르트가 콘스탄체와 결혼식을 올렸는데 묘하게도

이곳은 후에 모차르트의 장례식을 거행한 장소가 되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유해(遺骸)는 슈테판 성당의 안쪽 십자가 예배당에 안치되었다.

당시 모차르트의 유해는 다른 네 사람의 유해와 함께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는데 현재까지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빈의 중앙묘지에 서 있는 모차르트의 기념비, 성마르크스 묘지에 있는 작은 모차르트 비는 진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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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잘쯔부르크의 제일 작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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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심장부, 구 시청사의 천문시계 - 구시가 시청 건물의 시계

특히 고딕 양식의 구시청사(1338년) 탑에는 독특하고 화려한 천문시계(Orloj)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천문 시계인데 여전히 작동하는 시계로서는 가장 오래됐다.

 

구시가지 시계탑의 전설

1410년, 카단의 시계공인 미쿨라쉬(Mikulas of Kadan)와 신델(Sindel)이라고 불린 얀 온드레유브(Jan ondrejuv)에 의해

시계와 천문판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1490년 경 달력이 추가되었으며, 시계 전면부가 고딕 양식의 조각들로 장식되었다.

프라하 대학의 수학교수인 하누스(Hanus)가 수정해 완성한다. 1552년 시계 장인 얀 타보르스키(Jan Taborsky)가 수리를 했으며,

하누수를 시계제작인으로 언급한 문서를 남기면서 하누스가 천문시계를 만든 이로 알려졌다. 17세기에는 움직이는 조각상들이 덧붙여졌고

1865년의 대대대적인 수리 이후에는 ‘사도들의 행진’이 추가되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나치의 파괴로 인해 목조 부분은

전부 타버렸다고 하며 1948년 완전히 복원되었다.

 

이 시계는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전설이 흐른다. 유럽 각국에서 이 시계와 똑같이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폭주한다.

그러나 하누스 교수는 의문의 사고를 당해 맹인이 되고 만다. 프라하 시청에서 시계탑을 유일하게 독점하려고 교수를 장님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흘렀다. 화가 난 하누슈는 조수에게 도움을 청해 시계탑에 다시 올라갔고, 어느 누구도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시계를 부쉈다고 한다.

그가 시계에 저주를 내렸기 때문에, 시계를 고치려고 하는 사람은 죽거나 미쳐버리곤 했다고. 다른 나라의 시계탑에도

이와 엇비슷한 전설을 갖다 붙인 것도 아름답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1338년에 세워진 구 시청사는 70m 높이의 탑이 있는 서쪽의 5개 건물이 구시청사이며, 북쪽 부분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괴되었다.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별도로 재건하지 않고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 탑에는 오늘날 프라하의 상징이 된

아름다운 천문시계가 붙어있다. 1410년에 만들어진 이 시계는 매시 정각이 되면 천문시계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며, 종소리와 함께

작은 창문이 열리면서 인형으로 된 암탉과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가 하나씩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구 시청사의 예배당은

현지인들의 결혼식장으로 인기가 많다. 70m 높이의 구 시청사의 탑에 오르면 프라하 시가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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