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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 성 비트 대성당- 프라하성의 하이라이트인 성 비트 성당

 

이 성당은 925년부터 1929년까지 1천 년에 걸쳐 완성된 전형적인 고딕 스타일의 건축물로 길이 124m, 폭 60m, 천장 높이 33m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높은 천장과 대형 아치 창문마다 장식된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에 단번에 압도당하게 된다.

성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 그림들은 과거 글씨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에서 3번째 창문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체코가 자랑하는 알폰소 무하 작품으로  단연 인기를 끈다.

성당 내벽을 따라 중간쯤 들어가면 바츨라프 2세기 일대기를 부조로 만들어 놓은 육중한 청동문이 있고, 안으로 더 들어가면

16세기 체코의 왕을 겸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페르디난트 1세와 그의 가족들의 무덤인 하얀 대리석 묘가 있다.

무덤 오른쪽 뒤편에는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은으로 만든 화려한 관이 놓여 있는데, 무려 3만 톤의 은을 녹여 만든 것으로,

정교한 조각들이 매우 화려하다.  성당 지하에는 카를 4세 등 체코 왕들의 무덤이 안치된 왕실 무덤이 있고, 제단 오른쪽에 달린 쪽문으로

들어가면 첨탑 위로 오르는 계단이 연결되어 있다. 287개의 계단을 따라 첨탑 위로 오르면 프라하의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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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다리

 

세체니 다리는 부다와 페스트 지역을 연결한 최초의 다리로, 길이 375m, 너비 16m인 이 다리는

1839년부터 10년에 걸쳐 건설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폭파되었다가 전후에 재건되었다.

다뉴브강에 건설된 8개의 다리 중 가장 아름답다. 커다란 사자 4마리가 네 귀퉁이에 앉아있는 이 다리는

'사자다리'라고도 불리며, 19세기 중반에 가설되었으며, 밤에 불을 밝히는 전구가 사슬처럼 보인다고 하여 세체니(사슬) 다리로 불리고 있다.

또한 19세기 초 헝가리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세체니 백작을 이르기도 한다.

세체니 백작의 배를 타지 못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건설된 다리는 부다페스트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

한스가 강으로 뛰어든 장소로 유명하기도 하다. 국회의사당과 함께 다뉴브강 야경 명소로 손꼽힌다.

 

▼ 영웅광장에서 본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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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잘쯔부르크의 미라벨 정원

 

잘쯔부르크 신시가지의 미라벨 궁전 앞에 펼쳐져 있는 정원으로, 중앙역에서 라이너슈트라세를 따라 조금만 내려오면

오른쪽에 있다. 미라벨 궁전은 1606년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를 위해 지었으며,

당시는 알트나우라고 불렀다. 후임자인 마르쿠스 시티쿠스 대주교가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정원은 1690년 바로크 건축의 대가인 요한 피셔 폰 에를라흐(Johann Fischer von Erlach)가 조성하였고,

18세기에 건축가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Johann Lukas von Hildebrandt)가 개조하였으나 1818년 화재로 파괴된 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예전에는 궁전에 속해 있어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었지만 지금은 완전 개방하고 있다.

계절마다 여러 종류의 꽃이 번갈아 피고, 곳곳에 놓여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상들과 분수로 언제나 화려한 분위기가 감돈다.

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가 아이들과 함께 도레미송을 불렀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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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의 틴 성당

 

틴 성당은 뾰족하고 화려한 두 개의 첨탑이 높게 솟아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정확한 명칭은 '틴 앞의 성모 마리아 성당 '이다. 12세기 초 외국 상인이 투숙하던 숙박 시설에 딸린 부속 교회였던 이곳은 1365년에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웅장함이 돋보이는 교회로 재탄생하였다. 이후 14세기 말부터 15세기 초까지 얀 후스가 이끌었던 종교 개혁 운동인

후스파의 주요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후스파는 성찬식 때 성직자와 특권층에게만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는 데 반대해 모든 사람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는 성찬식을 기념하는 의미로 '황금성배'를 교회 앞에 부착하였으나,  이후 다른 세력이 황금성배를 녹여

성모 마리아 상을 만들게 됨으로써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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