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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6일 - 천사의 도시이며 스페인 정복자의 땅인 푸에블라(Puebla)

 

천사의 도시 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푸에블라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1531년에 멕시코에 세운 최초의 도시다.

오늘은 이곳에서 산토 도밍고 교회 내의 로사리오 성당과 수도원. 소칼로 광장을 보고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고 촐룰라(Cholula)를 가는 일정이다.

자긴 잔 것 같은데 어제 조금 걸었다고 다리도 무겁고 개운하지 않은 것을 보니 시차 탓도 있지만 내 나이도 무시하지 못 하리라.

무리를 해서 먼 여행길을 택한 것은 어쩌면 내 생애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이리라 싶어였을 것이다. 

호텔이 와이파이가 되어 이곳은 아침 시작인데 밤이 시작되고 있는 서울과 잘 도착했노라 안부를 주고받았다.


푸에블라는 멕시코에서 가장 높은 화산인 포포카테페틀 산 밑의 멕시코시티에서 동쪽으로 100㎞ 지점에 있다.

여기도 살짝 이상기후인지 날씨가 쌀쌀하다. 모두들 서울서 입고 온 패딩 차림이다. 혹시 어제 지나온 산등성 마을이 보일까 했는데 

전혀 반대인 모양이다. 해발 3000m가 넘는 산을 넘어가니 다들 긴장하라는 가이드 이야기에 밖을 보니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간다. 

정상 휴게소에 내려 바라보니 멀리 두 화산, 포포카테페틀과 이사후치우아틀이 보인다. 가끔 지진 소식이 들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곳도 화장실에서 돈을 받는다.

​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도시는 햇살도 공기도 상큼하다. 소칼로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중세도시의 바둑판 같은 모양으로 지어진 도시는 

어디를 봐도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건물이 스페인 어디쯤 와 있는듯한 느낌이다. 과거 이곳이 스페인의 식민 도시였음을 일깨워준다.

 

​멕시코는 사람보다 차가 우선이라던가. 조심조심 찻길을 건너 도착한 1571~1611년에 세운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교회 내 별도로

마련된 로사리오 예배당은  23½캐럿의 금을 들여 도금한 황금 제단 장식과 벽면, 천정 등이 시선을 끈다.

유럽과 신대륙의 양식이 섞인 멕시코 특유의 바로크 양식 종교예술의 걸작품으로 꼽힌다고, 성당 곳곳에 배치된 멕시코 성인들의 모습과

인디언 조각이 아름답고도 이채롭다. 1987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다음으로 간 곳이 산타 모니카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Monica).

붉은빛이 도는 아술레호스(azulejos) 타일 벽으로 장식된 수도원은 영락없는 스페인풍 건물이다.

예전에 쓰던 집기나 생활용품을 둘러 보고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아보카드로 만든 소스와 그외 다양한 소스로 옥수수의 가루로 만든

토르티아에 싸 먹는다. 바나나 잎인가? 거기에 싼 닭다리 찜이 푸짐하니 먹을만하였다.

 

잠시 광장에서 30여 분의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중앙광장 소칼로(Zocalo)에 위치한 대성당(Catedral de Puebla)은 1575~1649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설되었고, 거무스레한 종탑이

두 개 보이고 그 너머로 보이는 돔은 화려한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다. 멕시코 500 페소 지폐에 그려 있는 성당. 1550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1640년에 완성한 푸에블라의 가장 대표적인 성당. 멕시코시티 출신인  발따사르 데 에차베 엘 모소(Baltasar de Echave el Mozo)가

뿌에블라 대성당의 성기실(聖器室)의 벽화를 그렸다는데 아쉽게도 건물만 봤지 못 보았다.

아쉬운 것이 어디 그뿐이랴

대성당 근처에 있다는 5만 권의 책을 소장한 팔라포시아나 도서관(Biblioteca de Palafoxiana)  건물. 그 옆에 있는 Amparo 미술관에는

스페인 식민통치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가구,  집기, 그림 등을 포함해 중세 시기의 유물들이 잘 정돈되어 전시되고 있다고,

그외 산타 마리아 토난친틀라(Santa Maria Tonanzintla;어머니의 장소라는 뜻이라고 함)도 있네.

​포포카테페틀( Popocatépetl) 산.

해발 고도는 5,426m로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며, 산꼭대기에는 만년설이 보인다.

▼화산 활동 중인 산

푸에블라(Puebla)로 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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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5일 - 과달 루페(Our Lady of Guadalupe) 성모의 바실리카

과달루페란 뱀을 물리친 여인이란 뜻이다.

발현한 성모 마리아가 전한 '코아탈호페(Coatalxope)'는 에스파냐어로 '과달루페(Guadalupe)'로  발음하게 되었다. 카톨릭 국가인 멕시코에서 과달루뻬 성모는 수호신이자 국민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 독립국이 되자 멕시코 정부는 과달루페 성모를 '국가의 수호자'로 인정하고 12월 12일을 발현일로 정했는데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수호성인이 숭배 받는 유명한 순례지로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과달루페 성당은 1531년에서 1709년까지 지어졌다.스페인 출신 뻬드로 데 아리에따 가 설계한 바로크 양식의 성당 광장에는 잉카문명과 스페인 양식이 만난 시계탑이 있고 9개의 오래 된 성당이 있는데 그 중 제일 크고 오래된 성당은 지반 침하로 인해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고 벽에 틈이 생겼다. 성당 안에는 성인들과 성모상이 있다. 성당 옆에는 교황 바오로 동상이 있는데 5번이나 다녀갔다고 한다.

 붕괴의 위험 때문에 바로 옆에 새로 지은 건물은 로마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로마의 바티칸 바실리카 다음으로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순례지로  바실리카의 넓이는 1만 명의 신도들이 착석하기에 충분할 정도다. 장미꽃을 싼 후엔 디에고의 망또(티마)에 새겨졌다는 성모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는데 뉴바실리카 성당 푸른 지붕은 펼쳐진 틸마 모양을 하고 있고 기둥이 없는 넓은 성당은 하루 종일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가이드가 성모를 가까이 볼 수 있다고 해 어떻게 하고 의아했는데 뒤편으로 돌아가니 무빙 워크를 타고 올려다 볼 수 잇는 시설로 되어 있었다. 괜찮은 아이디어다.

 태양신을 숭배하던 원주민의 개종을 가져온 과달루뻬 성모 발현은 스페인 정복 10년만의 일이라 조작이 아닐가 의심을 했다고 하는데 당시는 직물에 이런 상을 그리는 것이 불가능했고, 또한 나사(NASA)의 조사에서도 누군가 붓질을 하거나 그려낸 흔적을 찾을 수없었다고 한다.또 그림에서 눈을 살짝 뜨고 있는데 이 눈을 확대해 보니 홍채안에 티마에 싼 장미꽃을 벗기는 순간 그자리에 있던 후안 디에고와 주교등 몇몇 사람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고,이것 역시 사람의 손으로 그린 것이 아니며, 티마는 400년이 지났는데도 옷감과 색이 변하지 않고 있다니 신기하다.

 저녁으로 한식을 먹었다. 한식당 어린 남자 종업원이 어찌나 한국말을 잘하고 귀여운지, 첫 날은 시내에 있는 100년이 넘었다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로비엔 당시의 집기나 물건들이 전시되어 고풍스럽긴 하나 시설은 그냥…, 여기서 이틀을 자는 일정이라 가방을 안 싸는 것만으로도 조금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아주 춥지는 않은 나라라 그런지 온수의 온도가 그냥 따뜻하다고 느끼는 정도다.

▼시간을 보니 오후 4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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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5일 - 과달 루페(Our Lady of Guadalupe) 성모의 바실리카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 (Teotihuacan)을 보고 버스로 멕시코시티 북쪽 티페약 언덕에 있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에도

나오는 과달루페 성당을 가다. 멕시코 시티가 아직 호수였을 때에는 테노치티틀란과 텍스코 호수가 나뉘어져 있었다. 

두 곳을( 육지로 연결하는 부분이 바로 틀랄텔롤코(Tlatelolco)였다. 여기서 가장 뚜렷이 보이는 곳이 작은 언덕인 테페약Tepeyac)이었다.

이 곳에는 대지의 여신인 토난친(Tonantzin)의 신전이 있었다. 토난친은 대지의 여신이며생명과 죽음의 신이었고, 아버지 신인 토타흐친(Totahtzin)도 함께

표현되는 신으로, 아스테카 종교의 통합적인 존재로 볼 수 있다. 에스파냐가 아스테카를 정복하자 이 신전은 즉각적으로 허물어졌다.

인디오 출신 후엔 디에고에게 성모 발현 이후  1895년에 로마교황도 마침내 과달루페 성모를 인정하였다.

▼ 스페인 출신 뻬드로 데 아리에따 가 설계한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과달루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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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어머니, 과달루뻬 성모

1531년 멕시코 과달루페 테페야크 언덕에에서 발현한 성모를 말한다.

 

1531년 12월 9일, 동틀 녘에 인디오인 후안 디에고(Juan Diego)는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멕시코 시로 향하였다.

그런데 떼뻬약(Tepeyac) 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성모 마리아가 그에게 나타났다. 성모 마리아는 후안에게 멕시코 시의

교에게 가서  자리에 '뱀을 무찌른 여인'이라는 뜻의 꼬아딸호뻬(Coatalxope)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기념할

성당을 지으라는 말을 전하라고 명한 뒤 사라졌다. 그러나 후안 디에고가 그 말을 전하자 당시 멕시코의 주교였던 후안 데 수마라가는 

이를 믿지 않았으며 확실한 증거를 요구했다. 다음 주에 후안 디에고는 삼촌의 병세가 위독하여 산띠아고 수도원에 사제를 청하러 가야만 했다.

그는 또 다시 마리아를 만나 귀찮은 일을 만들기가 싫어서 일부러 떼뻬약 산을 피해 갔으나 성모 마리아는 다시 그에게 나타났다.

마리아는 후안에게 삼촌이 기적에 의해 완전히 치유될 것이라고 안심시키고 다시 한 번 주교에게 가서 말을 전하라 명하였다.

그리고 발현의 증거로서 한 겨울에는 볼 수 없는 장미 한 다발을 후안의 품에 안겨주었다. 후안은 주교 앞에 나아가 리아의 말씀을 전하며

가슴에 품고 있던 장미꽃들을 펼쳐 보였다. 이 순간 장미꽃들이 땅에 떨어지면서 주교는 후안의 옷자락에서 그가 묘사했던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때부터 마리아가 명한 성당을 짓기 시작했으며 꼬아딸호뻬와 음성학적으로 

비슷한 스페인어 과달루뻬(Guadalupe)라는 이름으로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였다. 페인의 중남미 정복 초기에 일어난 이 사건은 이후

아메리카대륙의 식민화와 복음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원래 떼뻬약은 아스떼까 부족의 여신이었던 또난친(Tonantzin)을

경배하던 곳이었는데 과달루뻬 성모는 그리스도와 원주민 토착신앙을 결합시키는 의미가 있었으며 여기서 피정복민인 

원주민들은 잃어버린 자신들의 어머니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가난한 인디언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안 디에고(1474~1548)는 아직 아스테카제국이 번영을 누리고 있을 때인 1474년,

틀라야칵(Tlayacac)의 칼풀리(Capulli)의 한 귀족의 집에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이름은 쿠아우틀라토아친(Cuauhlatoatzin, 말하는 독수리)이라 붙여졌다. 그의 부모는 무역과 농업을 하여 부유하였다.

그는 20세에 결혼을 하여 자녀들을 낳고, 또한 매우 신앙심이 깊어 매일 아스테카의 신전에 있었다. 그는 12세 때에 궁전에 올라오는 등

아우이소틀 틀라토아니 치하에서 나라에 영향력이 있는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였고, 목테수마 2세와는 개인적으로도 만났다.
그는 다른 사제들과 함께 아스테카제국 멸망의 징조를 보았고, 목테수마 2세에게 인신공양을 자제하도록 여러 번 권고하였다고 한다.

그는 45세 되었을 때 아스테카제국이 멸망하는 것을 보았다. 1524년, 50세가 되었을 때 그와 그의 아내는 가톨릭 신자로서 세례를 받았다.

그의 세례명은 후안 디에고였다. 5년 후 아내가 죽었다.

 

▼16세기에 지어진 9개의 성당 중 제일 큰 성당 안에 있다.

   1531년 후안 디에고(1474~1548)의 눈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던 사건을 기리는 곳이다

▼성모는 유럽은 우럽인으로 여기는 원주민에 가깝게~ 

  그 나라에 맞는 다양한 얼굴로 나타나나 보다. 불교의 석기모니 부처도 그렇긴 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가톨릭 성모의  외형과 원주민의

옷차림과 피부 색깔, 예수의 어머니로서  인류의 어머니가 되는 갈색의 성모는 대지의 어머니인 토난친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후안 디에고(Juan Diego)와 성모

성모 발현 이후 7년 만에 당시 멕시코 인구 절반인 800만 명 이상이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이 장미는 당시 주교  후안 데 수마라가(Juan de Zumárraga 1476.-1548)의 고향인 스페인의 카스티안 산이라고 …,

 

▼과달루뻬 성모 허리에 검은 띠가 있는데 임신한 여성을 나타내는 원주민의 전통이라고 한다.

그래서 임신한 여자들과 갓난아기를 데리고 이곳을 찾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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