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Che Guevara)

 

▼체 게바라의 유해는 볼리비아에서 총살당한 지 30년 후인 1997년 발견돼 산타클라라로 옮겨졌다.

▼서거 29주년을 맞이해 1987년 세워진 체 게바라 기념관은 사후 30년 만에 쿠바로 돌아온 체 게바라와 그의 동지 17명의 유골이 안치된 곳.

▼체 게바라의 동상 옆에는 또 다른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에게 남긴 마지막으로 보내는 편지 내용이 새겨져 있다.

“나는 건설자로서 나의 가장 순수한 희망을 두고 갑니다. 혹시 또 다른 하늘 아래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바로 쿠바 국민 특히 당신에게 향할 것입니다” 라는 편지를  카스트로에게 남긴채 떠났던 체 게바라는 사후 30년이 지나서야

제2의 조국 쿠바의 산타클라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체 게바라가 1965년 4월1일 피델 카스트로에게 보낸  작별 편지 말미는

체 게바라를 상징하는 선전구호로 자주 사용하는 구절이 나온다.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조국 아니면 죽음을!”

혁명은 승리 아니면 죽음의 양자택일 과정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죽기 전까지 투쟁 속에서 살았다.

▼동상 옆에는 혁명을 이끈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석조 구조물이 있다.

▼​기념관

반응형
728x90
반응형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Che Guevara)의 도시 산타 클라라(Santa Clara)

 2018년 1월 20일 토 - 체 게바라의 도시 산타 클라라(Santa Clara)에 가다. 

 

쿠바하면 체 게바라. 헤밍웨이. 시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 중 체 게바라(Che Guevara)는 기념품, 벽화 또는 티셔츠 등등 시가를 물고 찍은 사진부터 다양한 그의 얼굴을 쿠바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

쿠바인의 영원한 친구가 맞는 것 같다. 아르헨티나 출신이며 의학도였던 그가 멕시코에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면서 쿠바 혁명에 뛰어들었다고,

쿠바의 영웅이 잠든 산타클라라에 도착. 기념관을 보려고 하는데 정전이라고 한다. 전기를 고치는 기사가 와야 하는데 연락해 보니 토요일이라 안 된다고,

못 오는 것이 아니라 안 오는 것이다. 월급 40~ 50달러. 일을 하든 안 하든 주는데 굳이 와야 할 이유가 없을지도.

 

사회주의 국가의 문제라면 문제가 아닐가 싶다, 우리네 같으면 민원이 빗발치고 난리일 텐데…, 

체 게바라 기념관(Che Guevara Monument)은 축구경기장만 한 광장을 배경으로 높이가 25m에 달하는 거대한 체 게바라의 청동상이 세워져 있어

멀리서도 잘 보인다. 기념관엔 체 게바라와 전사한 그의 동지들을 추모하는 전시물과 현판들이 있는데, 들어가도 사진은 못 찍게 되어 있다고 한다.

넓은 광장의 지하 무덤 위에 우뚝 서있는 체 게바라 청동 상엔 그가 생전에 했던 말 ‘승리의 그날까지(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쿠바 공산당 슬로건이 아래에 새겨져 있다. 그 옆 하얀 벽면에 혁명동지들이 부조(relie) 되어 있다.

 

산타 클라라(Santa Clara)는

쿠바 수도 아바나 동쪽 290km 지점에 있다. 쿠바나칸족(族) 인디오가 살고 있었으나, 1689년 대서양안의 레메디오스에서

해적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이주해온 에스파냐인(人)에 의하여 건설되었고 그 후 에스파냐 식민지의 행정중심지가 되었다.

 

체 게바라 기념관(Che Guevara Monument)

쿠바의 아이콘인 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호세 델라라의 거대한 청동 작품은 가히 현대 예술이 이루어 낸 승리이며,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박물관 안에는 체와, 전사한 그의 동지들을 추모하는 전시물과 현판들이 있다.

이 기념관이 문을 연 이후, '체의 도시'라고도 알려진 산타클라라는 관광객들과 열광적인 체의 팬들에게 메카가 되었다.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의 대통령이 되자, 체는 그의 장관 중 하나로 임명되었으나 그는 1965년 콩고로, 그리고 실패하게 될 전투를 향해 떠났다.

다음 해, 독재자를 타도하기 위해 노력하던 체는 CIA와 볼리비아 정부 연합군에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그의 죽음이 대한 증거로 그의 두 손만이

쿠바로 보내졌다. 그러나 1997년, 그의 나머지 유해와 볼리비아에서 죽은 동지들의 시신은 쿠바로 반환되어 산타클라라 기념관에 안장되었다.

 

호세 델라라가 만든, 막대한 힘을 지닌 체의 청동 초상은 초인적인 육체와 강인함을 지닌 사람을 나타낸다.  러나 체는 심하게 천식을 앓았으며,

사진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면  근육질이기는 해도 몹시 마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5m의 이 놀라운 조각상은 체 게바라가

쿠바에 있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나타냈던 힘과 권위를 입증한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인 장 폴 사르트르가 체 게바라를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극찬했던 영원한 게릴라이자

남미 대륙의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 그가 이 도시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팔에 깁스를 한 채 산타클라라를 내려다보고 있다.

▼1967년 39세 때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정부군에 잡혀 총살 당한 체 게바라.

2017년은 쿠바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게릴라전 중에도 매일 일기를 썼다는

그는 많은 명언들을 남겼다. 대표적인 말이 “네 자유와 권리는 딱 네가 투쟁한 만큼 주어진다!”이다.

▼체 게바라의 50주기를 맞아 2017년 아일랜드에서 발행한 기념우표.
사진을 바탕으로 아일랜드 출신 미술가 짐 피츠패트릭이 제작한 팝아트 작품을 담았다.

산업부 장관 등 쿠바의 핵심 지도층이 된다. 쿠바 대혁명 6년 후, 그는 집권자 카스트로의다음가는 지위를 가졌음에도 콩고,

볼리비아 등의 혁명을 지원하기 위해 쿠바를 떠난다.

▼ 체 게바라 기념관(Che Guevara Monument) 광장

▼체 게바라의 죽음에 대한 증거로 그의 두 손이 쿠바와 아르헨티나로 보내졌다.  공동묘지에 묻혔던 그의 유해는

1997년 발굴단에 의해 유전자 감식을 거친 다음 쿠바로 반환되어 산타클라라 기념관에 안장되었다.

▼높이가 25m에 달하는 거대한 체 게바라의 청동 상

▼기록에 의하면 그가 생포될 당시 그의 몸에서는 소총과 권총 한 자루, 단도, 롤렉스 시계와 담배 파이프 두 개, 1만5천 달러가 나왔다고 한다.

이질에 시달린 영양실조 상태에다 이발과 면도를 하지 않아 매우 지저분한 모습이었으며  모카신이라는 인디언 전통 신발을 신고 있었다고,

쿠바 혁명의 2인자로 소련과 미국에 모두 대항했던 체 게바라의 당당했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서거 29주년을 맞이해 1987년 세워진 체 게바라 기념관은 사후 30년 만에 쿠바로 돌아온 체 게바라와 그의 동지 17명의 유골이 안치된 곳.

반응형
728x90
반응형

산타 클라라(Santa Clara)로 가는 길 3

 

점심 식사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산타 클라라로 

▼드디어 체 게바리의 도시 산타 클라라 도착

체 게바라 기념관(Che Guevara Monument) 광장

반응형
728x90
반응형

산타 클라라 (Santa Clara)로 가는 길 2

 

▼​산타 클라라가 시작되는 곳에 도착 잠시 내려 기념 사진도 찍고,

▼점심 먹을 식당에 도착

갓 짜낸 오렌지 쥬스가 상큼하다

▼식당 주위의 풍경

▼깔끔하게 꾸며져 있다.

▼건물을 신축 중인 것 같다.

▼​여기도 올드카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