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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핀카 비히아(Finca Vigia) 박물관에 가다.

 

오전이라 햇살이 눈부시다. 여기저기 개들이 보이는데 짓거나 그렇다고 가까이 오지도 않는다.

우리 일행 외에 미국인으로 보이는 여행객뿐인 박물관은 조용하다. 박물관은 내부 입장은 안되고 열린 문으로만 안을 들여다보게 되어있다.

 

언덕위의 집 핀카 비히아(Finca Vigia).

헤밍웨이가 1940년에 샀다는 건물은 아바나 시내 남동쪽 산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San Francisco de Paula)에 있다.

'전망 좋은 농장' ‘망루’, 라는 뜻. 본관과 별채와 정원에 수영장까지 2만7000여 평(9만㎡)의 부지에 있는 집이다.

내부는 입장 불가라 열린 문 사이로 실내를 모두 구경할 수 있는데, 1층엔 침실과 여러 방, 거실이 있다. 

그가 읽던 신문과 그림(피카소그림도 있다고,..) 그리고 많은 책들과 아프리카 등에서 사냥한 동물의 박제가 벽을 장식하고 있다.


야외 수영장 옆에 35세 때 구입한 낚싯배로 사용했던 40피트 길이의 '필라(Pilar)'가 전시돼 있다.

수영장 앞엔 헤밍웨이가 키웠던 애견 네 마리 블랙, 네그리타, 린다, 네론의 무덤. 샤워장으로 쓰인 건물 안에는 빛바랜 흑백 사진들도 있다. 

또 이곳에서 60마리의 고양이도 키웠다고, "인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감정을 숨기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1928년 쿠바를 처음 방문한 헤밍웨이는 1939년 정착해 1960년까지 살았고(쿠바혁명 이후 1960년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부인이 모두 4명이었는데 마지막 네번 째 부인 메리 웰시가 유품과 집을 쿠바에 기증해 1961년 박물관으로 만들어 운영한다.

 

"최고의 글은 사랑에 빠져있을 때 나온다" 사랑도 그러 했으려나 또 말년의 헤밍웨이는 여기서 15분 거리에 있는 어촌 코히마르(Cojimar)에서

낚시를 즐겼고,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1952)는 대어(大魚)를 낚으려고 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불굴의 정신과

고상한 모습을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묘사한 단편인데, 이 작품으로 1953년 퓰리처상을 받고,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인과 바다>는 그가 코히마르 어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바닷가 마을 코히마르가 주 무대인데

소설의 주인공인 노인 그레고리오는 104살까지 장수하고 2002년 숨지는 그 날까지 소설 주인공이라는 유명세를 누렸다고,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단신으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헤밍웨이가 200번을 고쳐 썼다는 소설 '노인과 바다'의 첫 문장이다.

노인은 아바나 바다에서 낚시를 하며 산 그 자신이 아니었을 까

 

“내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 내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라는

헤밍웨이가 남긴 이 낙서 하나로 라 보데기타와 엘 플로리디타는 아바나의 가장 인기 있는 관광명소가 됐고, 미국인이면서

쿠바에서 관광 아이콘으로 더 사랑받는 헤밍웨이는 "흥분 거리를 찾아다니지 말아요. 흥분 거리가 찾아오게 해야지." 란

말을 했다는데 머니 먼 이국땅의 동양 여자도 여기 온 걸 보면 그의 말이 맞는 듯.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7.21 ~ 1961.7.2)

《노인과 바다》(1952)로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  그 외《무기여 잘 있거라》,《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있다. 

문명의 세계를 속임수로 보고,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을, 간결한 문체로 묘사한 20세기의 대표작가이다. 

아프리카 여행을 하던 헤밍웨이는 두 번이나 비행기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고, 이후 전지요양에 힘썼다.

1961년 7월 2일 아침 엽총의 총구를 입에 문 채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

사진 작가 유섭 카쉬(Yousuf Karsh)이 찍은 사진

▼박물관으로 쓰이는 헤밍웨이의 집 ​핀카 비히아(Finca Vigia). 헤밍웨이가 1940년대 각계의 유명인사들을

이곳으로 초대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고, 특히 미국인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 햇살이 눈부신 계단에 개들이 눕거나 어정거리고 있다. 쿠바 어디를 가던 개 짖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벽에 박제된 동물들이 많은 걸로 보아 그는 동물애호가는 아닌 듯.

▼헤밍웨이는 작업실보다 침실에서 글 쓰는 걸 더 좋아했다.

▼유품들

▼도둑을 막기 의한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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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 헤밍웨이 단골 술집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

 

올드 아바나 중앙공원에서 오비스포 거리를 가다 보면 세계적인 대문호 헤밍웨이가 항상 찾았다고 전해지는 단골 술집이 초입에 있다.

이곳은 외벽이 핑크색 원색으로 칠해져 있어 금방 눈에 뜨인다. 엘 플로리디타를 시작으로 아르마스 광장은 약 1km의 거리에 있다

▼저기 보이는 건널목을 지나 직진하면

▼세계적인 대문호 헤밍웨이가 항상 찾았다고 전해지는 단골 술집이 보인다.

  엘 플로리디타 옆 건물 2층 아바나 클럽은 쿠바산 시가를 파는 상점이다.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 이른 아침이라 아직 문을 안 열었다. 이곳에서 헤밍웨이는 화이트 럼 더블 샷에 라임과 자몽 주스,

간 얼음을 넣어 오늘날의 슬러시처럼 차갑게 즐기는 자신만의 ‘다이키리’ 칵테일을 만들어 마셨는데, 이것을 엘 파파 도블레(El Papa Doble)라 한다.

"내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 내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

  간판에 다이키리의 요람(La Cuna del Daiquiri)이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다. 다이키리는 쿠바의 대표적인 칵테일.

당뇨가 있던 헤밍웨이는 설탕을 빼고 라임만 넣은 다이키리를 즐겨 마셨다.

▼이 동상은 아바나 상하수도를 설계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더 이상 생각이 안 나네~

▼1900년부터 사용된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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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01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는 ​도시 아바나(Havana)

 

호세 마르티 동상

▼오른쪽 건물은 국립미술관(National Museum of Fine Arts of Havana)

▼아바나 대극장 옆 건물은 호텔 잉글라테라(Hotel Inglaterra)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한 웅장한 외관이 돋보이는 건물로 1875년에 문을 연 아바나의 가장 오래된 호텔.

영국 윈스턴 처칠 수상이 1895년 스페인-쿠바 전쟁 당시 쿠바를 방문했을 때 묵었던 유서깊은 호텔로 2016년

미국 호텔 체인 스타우드사가 군부 소유의 잉글라테라 호텔 운영권을 건네받아 리모델링을 마치면 다시 운영을 시작. 

호텔 잉글라테라와 아바나 대극장 사이에는 노천 음식점, 카페 등이 즐기한  보행자 거리, 산 라파엘 거리(Boulevard de San Rafael)가 있다.

▼호텔 옥상에 사람들이 보인다. 쿠바에서 호텔은 나라에서 운영한다. 

▼중심지를 벗어나면 낡은 건물이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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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8일 (목)-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는 ​도시 아바나

 

1519년에 스페인이 건설한 아바나(Havana)는 바로크와 신고전주의적 기념물들이 혼합되어 있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쿠바에 가장 마지막으로 세운 도시이다.

1550년 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된 후,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아바나는 멕시코나 페루에서 확보한 보물을 스페인으로 이송하는

함대의 결집지로 적합했다. 이 때문에 아바나는 거대한 스페인 식민제국의 정문 역할을 했으며, 1607년에는 쿠바의 수도가 되었다.

​아바나란 명칭은 

스페인이 처음 정착지를 조성할 때 원주민이었던 타이노족 족장의 딸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5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세계 문화유산 도시이며, 1200만 인구 중에 200만 명이 모여 사는 쿠바의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다. 

스페인이 전 지역을 점령한 1514년 이전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땅.  스페인 정복자들이 휩쓸고 지나간 원주민 마을은 그들과 함께 들어온 

병균(천연두. 바이러스 등 전염병)으로 인해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으므로 사탕수수 노예로 부리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을 끌고 왔다고 한다.

국민의 대부분이 스페인이나 아프리카로부터 이민을 왔고, 그래서인가 모습들이 멕시코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회주의 국가라면 2008년 북한 금강산 온정리에 갔고, 중국은 2003년, 2014년엔 러시아도 다녀왔고, 

2018년엔 쿠바도 갔다 왔으니 지금은 시리아 저쪽만 빼면 못 가는 나라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서부, 서인도 제도에 있는 쿠바(cuba)를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시간이 멈춘 곳 같다.

*여행작가 이호준은 쿠바는 가보지 않은 곳조차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이 가는 곳이다. 넘쳐흐르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을 만나러 가는 곳이다.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가는 곳이다.

*어떤 기자는 혁명은 사라지고 체 게바라 사진만 남아있다.

 

그럼 나에게 쿠바는 무엇이었을 까?

사진을 배운(?) 사람이라면 시가를 문 체 게바라 사진을 한 번은 봤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나라.

인연이 닿을 거라는 생각조차 안 해 본 나라. 그러나 여행의 묘미란 낯선 곳에서 낯선 풍경을 만나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호텔에서 내려다본 밖은 파도가 높고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걱정했는데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는 시간엔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하다.

그런데 현지 가이드가 흑인이다. 교민은 있으나 우리말을 잘 못하고, 한국말하는 가이드가 모두 7명인데 쿠바인이란다. 

평양 김일성 대학에서 공부하고 서울도 왔다 가서 그런가 한국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알도 씨는 

나이가 60인데 키도 크고 나름 핸섬하다. 기사는 인상 좋은 백인인데 차를 타고 내릴 때마다 손을 잡아준다.

 

말레콘 해변 길을 따라 아바나(Havana) 시내로 간다. 바람이 부는 여름철이면 너울성 파도가 높아 통제되기도 한다고, 

살짝 부는 바람에도 바닷물이 말레콘에 부딪혀 튀어 오르고 도로가 바닷물로 흥건하다. 아바나도 이상기후라 다른 때보다 춥다고,

여기서 기온이 몇 도만 더 내려가면 얼어 죽을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아침에 국회의사당과 중앙광장을 보고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가 살았던 곳으로 간다.

 

▼이층 버스로 투어 중인 외국인들.

▼ 국회의사당 카피톨리오(Capitolio)

  1929년 당시 대통령인 마차도가 미국 국회의사당을 본떠 만든 건물.  매일 개방하였다는데 2013년부터 수리 중이라

밖에서 보는 것으로~ 돈이 없어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한다.

▼아바나에서 상징적인 건물 중 하나다.  쿠바의 유명 건축가 에우헤니오 라이네리 피에드라(Eugenio Rayneri Piedra)가 설계했다.

▼국회의사당과 국립극장

▼국회의사당 바로 옆에는 아바나 대극장이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할 1001가지 건축물 중 한 곳.

▼국립극장 

▼아바나는 쿠바의 수도이자, 캐리비안에서 가장 큰 도시. 100년 전 만들어진 도시의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으로 길거리

곳곳에서는 50,60년대식 올드카를 볼 수 있다. 관리가 잘 된 것은 25000불 한다고,

▼거리에는 1959년 쿠바 공산혁명 이전에 수입됐던 뷰익·쉐보레·포드 등 미국산 자동차가 관광 상품인 ‘올드카’로 변해 관광객을 태우고 질주하고 있다. 간혹 한국의 현대·기아차도 보인다.

▼아바나를 상징하는 올드카

▼러시아에서 수입한 코코(꼬꼬)택시

▼광장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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